살아가다, 냉장고 없이

Posted 2017.08.12 23:20

[작아 2017년 7,8월 특집 - 생태 여름 부엌] (글 전문 보기)


글 _ 사진 김미수







10년 넘게 냉장고 없는 저에너지 생태부엌을 실천해온 우리 부부의 이야기가 어느 누군가에게는 먼 나라의 동화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마당도 지하 저장고도 없는 아파트살이가 인기인데다 여름이 고온 다습한 한국에서는 절대 실현할 수 없을 거라며 말이다. 언제부터 우리는 부엌에 문 두 쪽으로도 모자라 김치냉장고까지 따로 두고, 이마저도 만족 못해 천 리터에 육박하는 문 네 쪽짜리 냉장고가 인기인 세상에 살게 되었을까.



살아가다, 냉장고 없이


▲ 6월 중순까지 사과를 저장해 놓고 먹는 지인의 켈러 ⓒ 김미수


장거리 연애 끝에 독일로 온 2005년, 우리 둘만의 셋집을 구해 필요한 가전을 오롯이 우리 손으로 결정하게 되었을 때, 남편은 대뜸 ‘냉장고 없이 살아보자’고 제안했다. 당시 냉장고를 문명화된 부엌의 대표 기기쯤으로 여기던 터라 처음엔 원시의 고달픈 생활이 펼쳐지지 않을까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합의 끝에 마음에 안정감을  주는 것 말곤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던 미니 냉장고 가동을 멈추고, 셋집에 딸린 반지하 저장 공간 ‘켈러’에 식품을 보관하기로 했다. 그 뒤로도 집을 구할 때마다 식품 보관에 적합한 서늘하고 깨끗한 켈러가  있는지 가장 먼저 고려하여 이를 대체 냉장 공간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냉장고 보다 켈러에서 식재료를 꺼내오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이렇게 독일에서 ‘대체 저장고’ 켈러를 쓰면서  한동안 잊고 있던 한국형 켈러, ‘고방’이 떠올랐다. 어릴 때 우리 동네에  냉장고가 집집마다 들어선 뒤에도 고방 같은 저장 공간은 여전히 함께  존재했다. 부엌 옆에 붙은 고방은 명절에 먹고 남은 유과나 전, 홍시 같은 것을 보관하는데 주로 썼는데, 엄마는 가끔 하얀 밥 튀기가 겉에 발라진 달콤한 유과 같은 주전부리를 꺼내 주셨다. 숨바꼭질하느라  가끔 숨어 들어갈 때면 햇빛이 들지 않아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던 기억도 난다.


냉장고를 쓰지 않아 따로 밑반찬을 해두고 먹지 않는 우리 집에선  대체로 주식에 반찬 두어 가지를 그때그때 만들어 먹는다. 오늘 아침에는 어제 점심 때 감자와 함께 압력솥에 쪄낸 통곡물빵에 요즘  비를 맞아 더 부드럽고 아삭거리는 상추 잎과 야생초, 허브를 뜯어다 기름과 소금으로만 살짝 양념을 해 먹었다. 점심엔 그제 해둔 찬밥 병조림을 데우고, 병아리콩과 완두콩가루를 빻아서 양념과 섞어둔  팔라펠 가루로 동그랑땡을 빚어 지져낸 뒤, 같은 팬에 주키니 애호박도 하나 썰어 남은 열로 살짝 볶았다. 텃밭 무청, 근대, 명아주를 한 주먹 뜯어다 나물을 무치고, 마지막으로 딱 하나 남은 겨울에 저장한 김치병을 열어 김치를 조금 곁들였다. 저녁은 텃밭에서 다양한 잎채소와 허브, 야생초를 잔뜩 뜯어다 채소 비빔 파스타를 해 먹었다. 텃밭 채소는 텃밭에 따로 받아 둔 빗물로 미리 씻고 부엌에서 수돗물로 잠깐 헹구기만 하면 된다. 단단한 채소꽁지나 잎채소 상한 부분 같은 찌꺼기는 따로 모아 화장실 분비물과 함께 퇴비로 만들어 다시 텃밭에 돌려줘 맛난 작물을 기르고 텃밭 생태계를 유지시키는데 힘을 보탠다. 끼니마다 먹을 만큼만 만들고, 혹시 음식이 상해도 퇴비 더미로 보내니 거의 버릴 게 없다. 


▲ 초여름 우리 집 텃밭 ⓒ 김미수


지구 환경에 할 수 있는 한 적은 부담을 주고 쓰레기 배출 없이 생태적으로 사는 것을 삶의 큰 가치로 둔 우리 부부는 이렇게 ‘먹고 싸면 다시 흙으로 되돌리는 생태적인 순환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생태부엌은 우리 삶의 중심이 되는 소중한 공간이다. 부엌 생활을 생태적으로 하기 위해 가장 먼저 신경 쓰는 부분은 ‘부엌 안  에너지 소비를 가능한 줄이기’이다. 그 때문에 오랫동안 계속 에너지  공급이 필요한 냉장고와 전기밥솥 같은 가전은 부엌에 두지 않는다. 그렇지만 오래된 빵을 덥히는 데 쓰는 구식 미니 오븐이나 금방 물을  끓일 수 있는 전기포트, ‘도깨비 방망이’라 불리는 요리에 유용한 핸드 믹서 같이 자질구레한 주방 전자기기들은 물론 쓴다. 새로 구입하기도 하지만 ‘전자기기가 필요하면 가족, 친지 주변에서 안 쓰는 것을  물려받거나 중고제품을 구입한다’는 원칙에 따라 친지들에게서 많이 물려받았다. 다음으로 ‘생태적인 밥상’을 차리는 것도 중요하다. 동물성 식품을 생산하는 데에 식물성 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환경오염도 심하기 때문에 채식이 육식보다 좀 더 생태적인  상차림이다. 이런 이유들로 우리 둘 다 결혼 전부터 유제품과 꿀을 포함한 동물성 식품을 아예 먹지 않는 비건 채식을 해왔다. 사실 냉장고 없이도 우리 집 상차림이 수월한 이유이기도 하다.


냉장고 없이 사는 것이 누군가에겐 포기할 게 많고 불편한 삶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에게 냉장고 없는 삶은 늘 얻는 게 많은 날들이다. 한 끼를 위해 온종일 전기밥솥을 켜 놓거나 한겨울에 냉장고를 켜는 대신 저녁에 산책삼아 손 맞잡고 조금씩 자주 장을 보러 나가면 좋겠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숨통 트이는 여름날을 맞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 부엌살림에서 냉장고 없이 자연스럽게 식품을 저장하는  데 반지하 저장고인 켈러는 큰 몫을 한다. 가을걷이 채소와  과일들은 마트에서 얻어온 납작한 나무상자에 한 층으로 담아 두고, 뿌리채소류는 흙을 담은 양동이에 보관한다. 텃밭이 없을  적 한여름에는 채소와 과일을 켈러에도 오래 저장하기 어렵고  한겨울에는 제철 지역산 채소가 적다보니 저장 방법에 고민이 됐다. 


고심 끝에 제철 떨이채소와 야생초들을 구해다 말리거나 소금물에 장아찌를 만들고 병조림까지 이것저것 음식 저장에 공을 많이 들였다. 요즘은 문 열고 나서면 바로 코앞에 텃밭이 있어 생태적으로 먹고  살기가 꽤 수월한 편이다. 늦봄부터 가을까지 서리 걱정 없는 동안은  일부러 심은 작물에, 다년생 허브와 절로 자라는 야생초까지 자연이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온갖 먹을거리가 넘쳐난다. 주키니 호박 여린 것은 바로바로 따 먹고, 껍질이 단단해지기 시작하면 완전히 익을  때까지 뒀다가 켈러에 두고 이듬해 봄까지 먹는다. 지난해 수확량이  많아 남았던 깍지 채 먹는 채소콩, 토마토, 체리, 메론 같은 작물은  병조림 해두고 새로 날 때까지 두고두고 먹는다. 


병조림 법은 뜻밖에 간단하다. 먼저 소독해 둔 유리병에 채소와 과일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거나 통째로 가득 채워 채소에는 소금, 과일에는 비정제설탕이나 천연시럽을 조금씩500밀리리터 유리병마다 약 1~2 작은 술 넣고 뜨거운 물을 병목까지 부어 뚜껑을 꼭 닫아 밀봉하기만 하면 된다. 병 채로 중탕해 온도차가 심하지 않은 서늘하고 그늘진 곳에 두면 수개월 넘게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이 밖에도 여러 소스, 피클, 과일 주스, 스프레드도 병조림해 두고 먹는다. 밥과 국, 반찬 몇 가지도 뜨거울 때 유리병에 담아 밀봉해 식혀 두면 냉장보관 하지 않고도 한여름에 사나흘은 거뜬히 먹을 수 있다. 이밖에 철마다 배추, 무, 무청, 무씨방과 야생초 잎 같은 제철 텃밭 재료로 김치를 담가 먹고,  한겨울에 차와 양념으로 쓸 허브, 가을걷이 콩과 옥수수 알 정도만 말리고 있다.


▲ 찬밥 병조림과 지연이 주신 우리집 생태 냉장고인 텃밭에서 수확한 푸성귀들로 후다닥 만들어낸 생태 여름 밥상 ⓒ 김미수


생태부엌을 실천하며 살다보니 시간이 흘러 갈수록 ‘지구를 위해  양심이 떳떳해 지는 것’ 말고도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다양한 변화들을 맞게 되었다. 독일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냉장고 가동을 멈추면서  자주 장을 보러 다녔는데, 그 덕에 간단한 셈과 일상회화 정도 밖에 못하던 독어 실력이 빠르게 늘었고 본의 아니게 사교성까지 높아졌다. 전기세 절감은 물론 대형 가전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전자파로 인한 스트레스와도 멀어졌다. 독일 동부 할레Halle로 이사와 얻은 셋집은 부지가 넓어 제대로 된 텃밭 농사를 지을 수 있고 끼마다 식재료를 그때그때 수확하다보니 이제까지 살아오며 가장 신선한 재료로 건강한 밥상을 차리고 있다. 작물은 농부의 잦은 발소리를 들으면 더욱 잘 자란다고 했던가? 식재료 따러 가기까지 더해 텃밭으로 자주 발걸음을 하다 보니 사실 우리 부부가 더 잘 자랐다. 하룻밤 사이 날마다 크게 성장해 작물과 다양한 생물들의 낙원이 되는 봄에서 초가을까지는 물론이고, 심지어 엄동설한에도 신기할 정도로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는 겨울작물들과 추위를 뚫고 나와 기꺼이 우리에게 샐러드거리를 제공해주는 야생초들까지 텃밭은 주린 배를 넘어 우리 영혼까지 풍요롭게 해 줬고, 때론 삶에 참 많은 위안을 주었다. 냉장고 없이 사는 것이 누군가에겐 포기할 게 많고 불편한 삶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이렇게 늘 얻는 게 많은  삶이다. 덥다고 에어컨을 틀고 따뜻한 한 끼를 위해 온종일 전기밥솥을 켜 놓거나 한겨울에 난방하면서 음식이 상할까 냉장고를 켜는 대신 저녁에 산책삼아 손 맞잡고 조금씩 자주 장을 보러 나가면 좋겠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열을 좀 덜 받고 숨통 트이는 여름날을 맞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 김미수 –  생태언론인으로 2001년 비건채식을 시작하며 생태적인 삶을 향한 첫걸음을 뗐다. ‘생태토양학자’인 독일인 남편 다니엘과 함께 독일에서 지속가능한 텃밭 농사를 지으며‘ 날마다 조금 더 생태적으로, 생태 순환의 삶을 살기’에 힘을 다한다. my-ecolife.net에서 경험을 나누고 있으며 올 봄 냉장고와 헤어진 어느 부부의 자급자족라이프, «생태부엌»을 펴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녹색연합에서 만드는 생태 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 250호 20177,8 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작아에서 허락을 해 주셔서 감사하게도 글 전문을 이곳에 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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