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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랜만에 보낸 다운  설  이야기

독일에 와서 처음으로 한인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다들 나 말고는 다른 한국인들을 찾아볼 수도 없는 곳에 살았었다. 독일에 와 처음 3년간을 지낸 에버스발데(Eberswalde)는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베를린에서 기차로 1시간 이내의 거리에 있었다. 그렇지만, 당시 나는 일부러 시간과 돈을 들이면서까지 그런 모임을 찾아다닐 만큼  한국인들과의 교류에 목 말라있지 않았고, 나름대로 이것저것 하느라 꽤 바빴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사를 한 게르바흐(Gerbach)는  살고 있는 가구 수가 400가구도 안 되는 워낙에 작은 마을로, 근처 50-60 킬로미터 이내 다른 마을과 도시를 다 합쳐서도 내가 거의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다.


 작년 가을, 이곳에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우연히 들른 마트에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가족을 만난 적이 있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그들이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말을 걸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서로 갈 길을 가게 된 사연이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바이로이트(Bayreuth)에는 한국인들이 좀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짐작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학교 내에 갑자기 알게 된 한국어 수업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다니엘 한국어 선생님을 통해서 한인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선 민족의 대명절 설이었던 어제, 바로 모임이 있었다. 설에는 다들 떡국을 먹는 한국과 달리 여기선 각자 준비해 오고 싶은 음식을 하나씩 준비해 와 차려 놓고 나눠 먹는 모양이었다. 독일어 선생님 말씀으론 다들 고기를 준비해오니, 채식을 하는 나와 남편이 먹을만한 걸로 집에서 자주 해 먹는 것을 준비해오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렇다고 정말 집에서 먹는 대로 삶은 감자에 야채볶음 혹은 밥하고 김치에 국- 뭐 이런 걸 들고 갈 수도 없을 것 같아 고심했었다. 그러던 중 언젠가 한 요리 블로거가 소개한 손님 접대에 좋은 밀쌈이 생각났다. 여기에 볶음밥을 과자틀에 찍어내 한 입 요리를 해 만들고, 자우어크라우트 샐러드를 곁들이면 좋겠다 싶었다. 마쳐야 할 작업이 있어, 모임 전날에는 장만 봐다 놓고, 약속시간인 오후 2시 모임 가기 전 오전에 음식을 만들었다.


 뭐, 준비해 간 음식이 모임에선 별로 썩 나쁘지 않은 반응을 얻었다. 또 (빛깔이 다채로와 그랬는지) 다들 음식이 예쁘다며 좋아해 주셨다. 그러나 그런 칭찬이 고맙고 기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뭔가 마음 한구석에서 떨쳐내지 못한 찝찝한 구석이 있었다. 이유인즉슨 준비해간 음식이 자우어크라우트 샐러드를 제외하곤 전혀 생태적이지 않은 요리였기 때문이다. 만든 시기와 사용한 재료에 따라선 전혀 다른, 생태적인 제철 요리라는 빛나는 이름을 붙여 줄 수도, 그리하여 내 마음도 한 점 부끄럼 없이 떳떳했을 수도 있었으련만.

 

설날 한인 모임에 준비해 간 음식

설날 한인 모임에 준비해 간 음식- 사진 바로 가까이에 보이는 두 가지 색 밀쌈과 한 입 볶음밥. ⓒ 김미수

 

위와 같은 긴 사연을 바탕으로 이름 붙여진, '생태적일 수도 있을 뻔한 파티 요리 둘- 밀전병 & 한 입 볶음밥'을 소개한다.

 


하나, 밀쌈 만들기

밀쌈은 밀전병(밀지짐이)을 얇게 부쳐서 오이, 버섯, 고기 등을 채 썰어 볶아 넣거나 깨를 꿀로 버무려 소를 만들어 넣고 말아 놓은 떡이다.

말이 떡이지 메밀 전병 등 다른 전병류와 같이 사실 부침개에 좀더 가까운 상차림이라고 할 수 있다. 안에 넣는 소에 따라 안주나 후식으로 먹는다는데, 찾아보니 요즘 사람들은 손님맞이 상차림에 많이 이용하는 것 같다. 여기서 소로 자주 이용하는 고기나 달걀 등의 속재료를 모두 식물성으로만 바꾼다면, 근사한 채식 밀쌈이 된다..

(두산백과사전 밀쌈, 전병, 메밀전병 참조) 

 

내가 사용한 밀쌈의 재료들

내가 사용한 밀쌈의 재료들- 생태적이지 않은 뻔뻔한 야채들에서 부터 친환경 착한 야채들 까지. ⓒ 김미수



내가 쓴 뻔뻔한 야채들 vs. 착한 야채들

빨간 파프리카- 시댁을 떠나올 때 어머님이 싸주신 야채. 스페인산이나 최악에는 이스라엘산으로 추정.

양송이- 지인에게 선물 받은 떨이 야채. 독일산.

애호박- 시댁을 떠나올 때 어머님이 싸주신 야채. 스페인산으로 추정.

브로콜리- 시댁을 떠나올 때 어머님이 싸주신 야채. 스페인산으로 추정.

오이- 밀쌈 요리재료를 보고 마트에서 집어든 스페인산. (가장 가까운 마트만 재빨리 다녀온 터라 평상시와 다르게 그 곳에 있는대로 그냥 집어 들었다.)                                                 

 

단호박- 수확시기인 늦가을에 사서 저장해 둔 독일산 유기농.

양파- 수확시기인 늦가을에 사서 저장해 둔 독일산 유기농.

당근- 늦가을에 사서 저장해 둔 독일산 혹은 오스트리아산 (여기선 그나마 근처) 유기농.

적색 양배추- 늦가을에 사서 저장해 둔 독일산 유기농.

 

밀가루- 상당히 많이 정제한, 내가 거의 백밀가루 동급으로 치는 밀가루. 유기농

스펠트 밀(Triticum spelta, 영어명: Spelt, 독어명: Dinkel)- 통곡식 가루. 독일산. 유기농

흑미가루- 엄마가 고향에서 농사 지으시는 사촌 고모님 댁에서 사서 보내주신 흑미 한 보따리 중 조금을 직접 분쇄. 유기농인지 여부는 확실치 않음. 한국에 있었다면, 그나마 지역농산물이었겠지만, 이곳에선 원거리 수입 농산물의 위치. 스스로에게 마음의 위안을 조금 준다면,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제품이란 것과 고향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

 

밀전병을 위한 두 가지 색 반죽

밀전병을 위한 두 가지 색 반죽- 밀가루와 물의 비율은 1:1.5 정도가 적당하다. 하지만, 만들어보니 전병이 자꾸 쳐져서 밀가루를 좀 더 넣어 반죽을 되게 만들었다. ⓒ 김미수

 

각각의 채소들을 길고 가늘게 채를 썰어 취향에 따라 생으로 쓰거나 아주 조금의 기름을 넣고 볶아 쓴다.

중요한 점은, 김밥에 넣는 재료와 마찬가지로 물기 없이 표면이 약간 건조한 상태가 좋다. (기름이 많거나 자체의 물이 나와 재료가 소스나 물기로 젖어 있으면, 쌈을 말았을 때 쳐지거나 심지어 떠질 수도 있다.)


내 경우엔 오이를 껍질 있는  단단한 쪽만 얇게 썰어서 생으로, 피프리카 역시 머리와 꽁지 부분을 잘라내고 최대한 일자로 얇게 썰어 내 생으로 사용하였다. 나머지 재료들은 채를 썰어 불에 볶아 내고 소금 간 하였다. 브로콜리는 꽃부분(대 아닌 진한 녹색의 윗부분)만 작게 썰어 역시 살짝 볶아 사용했다.

 

야채 준비는 써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요리초보라도 문제없을 정도로 참 간단하다. (그런데 준비하다보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밀쌈 성공의 최대 변수는 밀전병 지지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나는 테플론 프라이팬을 쓰지 않아 집에 있는 것들은 죄다 스테인리스 제품뿐이라 처음부터 쉽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었다. 사실 전날 점심으로 두어 개를 시범 삼아 만들어 봤는데, 그때는 100% 흰 밀가루만 써서 그랬는지 별 무리없이 밀전병을 지져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 당일 큰 문제가 생겼다. 전날의 성공으로 자신감이 있었기에 몸에 좋다는 스펠트 밀가루를 30% 정도 섞었는데, -아마도 이 때문인지?- 만드는 족족 팬에 눌어붙어 엉망이 되었다.

 

약속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계속 시도하다가 이대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묘안을 낸 것이 바로 오븐용 기름종이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오븐용 기름종이를 프라이팬 크기로 잘라 달궈진 팬에 놓고 그 위에다 반죽을 부어 익혔다. 얇고 동그랗게 부친 밀전병을 김밥 마는 발 위에 놓고, 각각의 재료를 한 두개씩 소로 올려 김밥 말듯이 꼭꼭 말아준다.


직접 기른 새싹채소를 곁들인다면 좋았겠지만, 시댁에서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새싹을 기를 시간이 없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 한 입 볶음밥 만들기

야채는 위의 재료 남는 것들을 다지듯 작게 썰어 사용한다. 나는 밀쌈 만들 때 사용한 재료 중 오이, 적양배추, 파프리카 양송이를 제외한 나머지 재료들+감자를 사용했다.

적색 양배추는 밥에 물이 들면 지저분해 보일까 봐 뺏고, 파프리카와 양송이는 정신없이 만들다가 깜빡 잊고 넣지 못 했다. (생오이는 볶음밥엔 안 어울려서 미사용.)

 

밥은 쌀 대신 수수와 퀴노아 등을 섞은 잡곡밥에 약간의 간을 하고, 기름을 한 숟가락 넣고 했다. 처음에 밥할 때 부터 거친 옥수수 가루를 반 컵 못되게 넣고 함께 끓였는데, 이는 나중에 모양 틀에 찍을 때 모양이 유지되도록 밥의 점도를 더하기 위해서였다.

 

볶음밥 재료를 보면,

주요 야채들- 위와 동일

감자- 독일산 유기농

 

수수- 유기농, 원산지는 알 수 없음.

퀴노아(Quinoa) 흰색+ 붉은색 두 종류- 유기농 공정무역 제품. 자원 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공정무역가게에서 사둔 것.

 

위의 재료로 야채를 양파-당근-감자-단호박-브로콜리-파프리카 순으로 팬에 볶다가 소금으로 간을 하고 밥을 넣고 골고루 섞고서, 맛을 보며 소금을 더 한다. 불을 끄고 숟가락이나 주걱으로 조리가 끝난 볶음밥을 꼭꼭 눌러 놓는다. 여기에 여러 가지 과자 틀로 찍어내면 완성. 이때 과자 틀은 한입에 들어가기 좋을 크기-가장 작은 크기의 틀이 적당하다.

 

한 입 볶음밥

한 입 볶음밥- 별 것 아닌 요리지만, 모양틀에 찍어내면 한 입에 쏙 들어가는 근사한 파티요리가 된다. ⓒ 김미수

 

사실 밀쌈을 만드는데, 참고한 요리법에 달걀, , 맛살 같은 것들을 썼기에, 뭔가 야채 외의 것을 곁들이면 사람들 먹기에 더 나으려나 싶어 마트에서 덥썩 집어든 대두식품(Sojaprodukt)이 있었다. 콩으로 만든 기다란 소시지였다. 장을 볼 때 정신이 없었는지 성분을 확인해 보지도 않고 덥석 사놓고, 그날 당일 요리를 하려고 살펴보니 계란에서 추출한 단백질이 들어 있었다. (나와 남편은 비전-Vegan인데, 평소에 고기, 유제품, 꿀 등의 모든 동물성 제품을 제외한 식물성 식품만을 섭취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이것은 빼두고 야채만으로 밀쌈을 말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 만날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겠다고 생각해서였는지, 아니면 요리 형편없이 한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걱정이 되었었는지 뭔가 잔뜩 긴장을 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생전 안 하던 장보기를 좀 하게 되었는다. 요리할 때는 워낙 시간에 쫓기고 바쁘게 준비해서 별생각이 없었는데, 지내놓고 보니, 개인적으로는 별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지난 이틀을 떠올려 보면, 혼자 중심을 잃고 좀 우왕좌왕한 것 같다.

 

다행히 모임은 잘 끝났고, 처음 보는 분들인데 다들 친절하고 다정하셨다. 그리고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마트에서 마주쳤던, 그 가족분들. 그때 그분들이 나를 보시고는 혹시 한국인이 아닌가 싶어 일부러 나 들으라고 한국어로 좀 크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내가 남편이랑 둘이서 독일어로만 이야기하고 별 반응이 없는 것 같으니, 그분들은 '한국인 아닌가 보네...'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사실 난 그때 딴에는 기회를 엿보느라 주위를 맴돌고 있었던 건데.... 그땐 내가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 보니 우습다. 그냥 바로 가서 말 걸어 볼걸.

 

독일에 온 이후 음력 설은 특별한 일 없이 그냥 넘어 가곤 했는데, 음식준비에서부터 같은 지역에 사는 다른 한국인들과의 만남까지. 오랜만에 우리 설을 명절다운 명절처럼 보낸 것 같다.

 

 

밀쌈 요리 참고 (문성실의 이야기가 있는 밥상- '손님 접대 요리(밀총떡, 호박버섯볶음)'

업데이트 된 '(밀쌈말이) 먹기 전에 눈이 먼저 호사하는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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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명약-아스피린의 전신인 버드나무 껍질 차 이야기

크리스마스 연휴에 시댁에 온 후, 새해 첫 달이 넘어가도록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남편 무릎에 이상이 생겨 병원을 오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전 직장에서 한 번 다쳤던 무릎이 연초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부어 올랐다. 정밀 검사 결과로는 다행히 무릎에 크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무릎 조직인 메니스쿠스(독명: Meniskus)가 아주 미세한 정도 손상이 되어 약간의 염증이 생긴 것 같다고 하였다. 특이하게 생긴 무릎 보호대 같은 것을 처방해 주고, 의사는 달리 약을 처방해 주진 않았다. 우리 둘 다 평소에 양약은 입에 대지도 않기 때문에 쓸데없는 논쟁은 피하게 되어서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했다.
 
버드나무 껍질 차

▲ 버드나무 껍질 차- 독일 약국에서는 양약과 천연 약재를 함께 판매하고 있다. ⓒ 김미수


나중에 통증과 염증에 좋은 약용식물이 무엇인지 찾아보니, 버드나무 껍질(영명: willow bark, 독명: Weiden Rinde)이 있었다. 버드나무 껍질 차는 복용 시 아스피린과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세기의 명약이라 불리는 아스피린도 기본 성분을 처음에 버드나무 껍질에서 발견해 이후에 연구와 실험을 거쳐 만들어 낸 것이라 한다.

아스피린처럼 버드나무 껍질 또한 통증완화, 염증제거, 열 내림, 류머티즘 등에 효과가 있다. 이러한 작용을 하는 주요 성분은 버드나무 껍질에 든 살리신(영·독명: Salicin)이다. 살리신은 체내에서 살리실산(영명: salicylic acid, 독명: Salicylsäure)으로 대사되는데, 이 살리실산이 바로 아스피린의 기본 성분이다.
(
위키피디아, Weiden (Botanik)의  Heilkunde und Medizin편 참조)
 
 
약국에서 구매한 말린 버드나무 껍질 차

▲ 약국에서 구매한 말린 버드나무 껍질 차- 잘 우러난 차는 진한 밤색을 띤다. ⓒ 김미수

독일은 약용식물(영명: herb, 독명: Kraeuter)이 상당히 상용화되어 있어서 약국에서 대체 약으로 쓸 수 있는 오만가지 천연약재를 양약과 같이 판매하고 있다. 아침에 주문해서 그날 오후에 찾으러 가 집에서 약간의 정성을 더해 약차를 만들어 복용했다. 정확한 검사 결과가 나온 이후 남편은 일주일 넘게 버드나무 껍질 차를 마시고 있다. 처음 며칠간은 매일, 이후에는 격일로. 직접 복용해 본 남편의 말을 빌리자면, 예전보다 통증도 줄어들고 확실히 이 약차가 도움되고 있다고 한다.

버드나무 차를 복용하면 복용량의 살리신이 작용하는 효과보다 더 큰 효과를 볼 수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버드나무 껍질에든 플라보노이드 같은 다른 성분들과의 시너지효과에 따른 결과일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양약과 달리, 이런 자연 약재는 내성이 생기거나 약효의 강도에 따라 위에 부담이 가거나 하는 등의 부작용이 거의 없다. 단 몇 가지의 요소만 추출해 만든 양약과 달리 자연이 내린 온전한 생명력과 인간이 모두 밝혀내지 못한 약효까지 품은 자연 약재. 우리가 화학약품보다 될 수 있으면 자연적인 대체 약차 등을 더 선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Good to know]   

1. 버드나무 껍질 차 마시는 법

냄비에 찻숟가락으로 2스푼의 말린 버드나무 껍질을 넣고  0.5 리터 찬물을 부어 아주 약한 불에 올려놓는다.
끓기 시작하면 불을 끈 후 5분 정도 성분이 더 우러나도록 기다린 후 거름망에 거른다. 찬물을 붓고 서서히 끓이는 이유는 나무껍질에 있는 성분이 잘 우러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마시는 양은 하루에 3-5 컵 정도가 적당하다. 섭취용량을 잘 지키면 부작용이 따를 위험은 없다. 단 임산부는 복용을 피하도록 한다.
(Arne Krüger, <WEIDENRINDE ODER ASPIRIN ?>, Heilpraktiker & Volksheilkunde Nr. 1 / 2000,
WEIDENRINDENTEE편 참조)

2.  버드나무(Salix) 껍질에 든 성분
(원명을 띄어쓰기나 괄호 없이 영·독명 순으로 적음. 단, 영·독명이 같으면 하나만 적음)

버드나무껍질에는 살리실알코올글리코시드Salicylalkoholglykoside(살리신Salicin, 살리 레포시드Salireposid,
살리코틴Salicortin, 프라길린Fragilin,
피세인Picein 등), 플라보노이드flavonoids·Flavonoide, 페놀카르복시산
Phenol carboxylic
acids·Phenolcarbonsäuren  그리고 타닌Tannins·Gerbstoffe 등이 함유되어 있다.

아스피린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주요 성분인 살리신은 장에서 살릭알코올과 포도당으로 분리되어, 간에서 살리실산으로 전환된다.
(Arne Krüger,<WEIDENRINDE ODER ASPIRIN ?>, Heilpraktiker & Volksheilkunde Nr. 1 / 2000,
Inhaltsstoffe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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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2010/01/2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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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healthy menstrual period

In the past, I've never experienced the period pain. When some friends of mine mentioned the horrible experience of their period pain to me, I was always doubtful if their story is really true or not. However, around the middle of my twenties, I had a chance to experience 'disabling period pain'. Normally my period has 7 days long. Among 7 days I have just one painful day. And the rest is normal just like before. And Till now I've endured the 1st painful days without painkiller. Because I've decided not to take chemical medicines if possible, since being adult, 

Since my removing to Germany, my period pain has got worse. I suppose that can be because my body could not adjust to german heating system. Korean heat the floor and keep the bedroom warm during the sleeping time. But generally German use the air heating system and reduce or turn off the heater when they go to sleep. Here in Germany I made several trials to support my body during my period. For example, keeping my lower belly warm all the time and drinking warm tea and soup so on. Unfortunately They were not so helpful.
 
Today was the first day of menstruation again. And 'the horrible pain' again. When I had been in korea, I had trained Yoga regularly. But in Germany I've been too lazy except my bad days. Shame to say, but nowadays I have one stupid pattern like this:

feeling not well or really sick
-> starting Yoga training again and regretting my laziness alot
-> continuing Yoga for several days
-> becoming very fit
-> no Yoga anymore(evenif I wish Yoga training regularly!)

Just as mentioned above, today I decieded to start Yoga again. But I found myself sitting on the Yoga mat that my period pain has got really worse. 'Then, at least some Breathing without Asana(body training of Yoga)' I said my self. Then I did 'the breathing'-breathe in and breath out and moved my lower belly depending on my breathing, too. When it became easier for me, I concentrated on my lower belly(Danjeon).

After 1 or 2 minutes the pain has gone slowly so that I could do some Asana Training(Asana- typical practice of Yoga or body pose. This time I concentrated especially on breathing during Asana.). I continued this breathing again and again whenever I would feel some pain. Thanks to this I could have an almost painless day today. Otherwise, I had to suffer from the period pain all the day or even to have troubles on falling a sleep at night.

I know it too early to insist that "Breathing training"  reduced my pain 100%. It might take 3 or 4 more trial for me to be so sure of this result. Nervertheless, it was a so precious experience and a very thankful day today because that I could have an almost painless first period day and do Yoga training again.

I wish that I could continue Yoga training from now on.
 

Breathing concentrated on the hypogastric center(Danjeon in Korean)

-ready position
1. Sit crossed-legged on the mat.
2. Put your hands in your lap and let Palms of your hands see the sky.
3. Pose your hands like having one egg on each palms and put your thumb and index finger toghter in order to make circle.

-Breathing
4. Close your eyes(better for concentration). Repeat to breathe in and out.
If possible, just breathe through your nose.
If not, breathe in through your nose and breathe out through your mouth.
5. Make your lower abdomen slowly bigger when you breathe in, and make your lower abdomen slowly flat when breathe out. Like filling in and out the air into a balloon.
6. Time of the breathing in is equal to that of breathing out. Count the number of breathing in and out
7. Try to make longer the breathing time. When it is adapted to you, concentrate on hypogastric center and continue to brea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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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서 생리통으로 고생하는 이들의 무시무시한 괴담을 들을 때마다 같은 여자임에도 '저 말이 정말 사실일까?'라는 의구심을 가질 만큼 나는 생리통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 그러다가 20대 중반이 되기 좀 전쯤이던가, 언제부터인지 나도 그 '무시무시한 생리통'을 경험하게 되었다.

나는 보통 일주일간의 생리주기를 갖고 있는데, 묘하게도 생리 첫날만 상당한 통증이 있고, 나머지 날들은 멀쩡하다. 머리가 굵어지고 난 후, 웬만해선 진통제, 항생제 따위의 양약은 절대 먹지 않기로한 나인지라, 나름 무시무시한 통증에도 진통제는 입에도 대지 않고 견뎠다. 


독일로 온 이후로 이 통증이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결코 나아지진 않았다. 바닥 난방을 하고, 잘 때에도 따뜻하게 '불을 때고' 자는 우리나라와 달리, 벽에 붙어 공기만 좀 데우고 마는 히터에, 잘 때에는 난방을 끄거나 줄이는 독일의 문화에 적응을 하지 못한 탓이 컸던 것 같다. 배를 따뜻하게 하고 따뜻한 차나 국을 마시는 정도로 보조적인 수단을 가하긴 했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오늘 또 생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역시나 '이 놈의 통증'이 또 찾아왔다. 한국에 있을 땐 열심히 했던 요가 수련도 독일에 온 후론 흐지부지된 지도 여러 해. 난 꼭 몸에 이상이 있기만 하면 그간의 게으름을 뉘우치는 마음으로 수련을 다시 시작하곤 했었는데, 오늘도 역시나 다를 바가 없었다.    


매트를 깔고 통증에 시달리는 몸을 추슬러 일단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는데, 극심한 통증으로 시작도 못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럼 욕심부리지 말고 아사나(요가 동작 수련) 대신, 호흡만이라도 좀 해보자 싶어, 아랫배를 들쑥날쑥 거리며 호흡을 시작했다. 단전에 의식을 모으고 들숨 날숨의 수를 세며 '통증아, 좀 잦아들어 주세요.'라고 부탁하는 마음을 모아봤다. 그러기를 한 일 이분쯤 지났을까. 숨을 내쉴 때는 여전히 통증이 있었지만, 차츰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이에 힘입어 아사나 수련까지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오늘 수련은 특히 호흡에 집중을 했다.

이후에는 통증이 시작되려 하면 다시 호흡을 하고, 또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보니, 거의 통증 없는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다른 때 같으면 오늘 잠자리에 들 때까지 통증에 시달렸거나, 심한 경우 통증 때문에 밤새 뒤척거리다가 겨우 잠에 들었을 것이 뻔했다.


이런 '감사한' 경험은 처음이라, 통증이 사라진 게 온전히 단전에 집중한 호흡 덕이라고 결론을 내리기엔 성급한 감이 있다. 앞으로 적어도 서너 달은 더 시도해 보고 난 후라야, '아 정말 그렇구나.' ' 적어도 내 경우에는 효과가 아주 좋았다.'라는 말을 해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통증없는 하루를 보낼 수 있어서, 그리고 '다시 또다시' 요가 수련을 시작하게 되어서 감사한 하루였다.

요가 수련, 이번에는 절대 작심삼일로 끝내지 말아야지.


단전에 집중한 호흡 하기

-준비자세
1. 본인이 편안한 대로 가부좌를 틀거나 양반다리로 앉는다. 허리는 곧게 편다.
2. 양 무릎에 손등이 무릎에 닿게 올려 놓고, 이때 손은 계란 하나를 쥔 듯이 자연스레 올려놓는다.
3. 원 모양을 만들듯 엄지 검지를 맞붙인다. 

-호흡하기
4. 눈을 감고(집중하기에 좋다.)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가를 반복한다. 가능하면 코로 호흡을 하되, 힘들 경우에는 코로 들이쉬었다가 입으로 내뱉도록 한다.
5. 들숨에 아랫배를 볼록하게 만들고 날숨에 그 배에 있는 공기를 뿜어내듯 납작하게 만들며 천천히 호흡한다. 
6. 들숨 날숨의 비율을 1대 1 정도로 하는데, 호흡을 하면서 속으로 숫자를 세어 비율을 맞춰본다.
 예를 들어, 들이쉬면서 셋을 세고 내쉬면서 셋을 세는 식으로.
7. 점점 숨의 길이를 늘여 가 본다. 숨 쉬는게 자연스러워지면 단전에 집중하며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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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고백

Posted 2009/08/23 22:22
-떠나신 김대중 대통령님을 기리며...

2009년 8월18일

"한국의 예전 대통령 김대중씨가 어제 병원에서 향년 85세의 일기로 숨을 거뒀다. 사인은 ...."
아침 준비 중 별 생각없이 듣던 라디오에서 '한국'과 '김대중'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이 멈춰 졌다.
'무슨 소식일까... 설마! 아니 그럼 안 되는데... 아, 어떻해......' 
문장의 끝을 듣기 전의 그 짧은 사이가(주어에 동사가 따라붙는 그 짧은), 다음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던- 그 침 꼴깍하는 사이가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 없었다.
외신임에도 뉴스 첫머리에 전하는 소식이라 나도 모르게 서거 소식일 수도 있을 거란걸 짐작하고 있었지만, 속으론 내 짐작이 사실이 아니길... 정말 그것만은 아니길 바라고 또 바랐다.
 
어쩌면 나는 지금 한국의 모습에 부채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국 나이론 내 나이가 올해 서른 하나이니, 내가 투표권을 갖게 된지 10년 가까이 되었다. 지역구 선거, 시장 뭐 이런 그나마 자잘한 선거 몇번 투표를 해 본 적이 있지만, 부끄럽게도 이제껏 나는 단 한 번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참여해 본 적이 없다.


1997년 말
정권이 바뀌던 그 해, 나는 고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정말 투표를 하고 싶었지만,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시기. 정치에 대해 별로 알지도 못하고, 그리 많은 관심이 있진 않았지만, 정권이 바뀌었고, 정말 민주적으로 제대로 된 (결과가 조작되지 않은) 선거가 치뤄졌고, 또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김대중님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 올랐었던 기억이 난다.


2002년 말
그 역사적인 순간에도 나는 한국에 없었다.
나는 2002년 두 학기를 모두 휴학하고, 인도에서 자원 활동(Volunteering)을 한 후, 유럽으로 갔었다. 남자 친구(지금의 남편)와 영국에 있는 유기농 생태 프로젝트에서 같이 실습을 한 후, 일정을 연기해 독일에 있는 남자친구 집에서 묵고 있었다. 당시 내 머리속엔 대통령 선거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었다. 휴학을 하고 외국에 나온 이상, 되도록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게다가 서로 다른 나라에 살다보니, 나는 당시 남자친구와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개강을 하기 전까지 되도록 오래 함께 있고 싶어, 원래 일정보다 좀더 오래 유럽에 머물게 되었다.

식사 중이었나, 식사 준비 중이었나.. 여튼 부엌에서 텔레비전을 켜놓고 뭔가를 하고 있는데, 노무현 대통령 당선 모습이 화면에 나왔다. 주위의 노란 물결과 함께 사람들이 너무 기뻐하는 그런 모습과 화면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기억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뒷배경도 없고,  엄청난 자산가도 아니며, 그냥 우리들 중의 하나인 것 같은 그런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다니...'
정말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의 수준이 그 정도라는 것이 너무 자랑스러웠었다. 나는 투표를 하지 못했지만, 나를 대신해서 그런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국민들이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던 그 해 나는 독일에 있었다. (2005년 이후 나는 결혼해 독일에서 살고 있다.) 그 당시 나는 남편이 직장을 옮기고 이사를 하고, 뭐 이런 것들로 분주해 역시 선거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독일에 온지 여러 해가 지났고, 가족들이 보고 싶기도 했지만 꼭 당장 한국에 가야만 하는 이유는 없었다. 무작정 선거만을 이유로 다 접고 한국에 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끔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를 읽으며 대충 돌아가는 추이만 지켜 봤었다. 그런데 모든 다른 이유를 불문하고 어쨌든 독재자의 딸이 정당(그것이 아무리 극우정당이라고 하더라도)의 대표가 된 것, 그리고 결국 대통령 후보 경합까지 벌인 것 등 정말이지 믿고 싶지 않은 일들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한국과 독일의 거리 때문에 투표도 하러가지 못하는 입장이고, 한국 밖에 나와있는 상황이라 나는 뭐라 말할 자격도 없는지도 모르나 너무 답답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한숨만 나오던 때, 이명박 씨의 대통령 당선 소식에 나는 정말 어디에 뭐라 말도 못하고 기가 막힌 심정이었다.


이후 한 지인과의 통화에서 나는 마치 항의 하듯 따져 물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죠?(어쩜 이런 선거 결과가 나올수가 있느냐)'
'어쨌든 수업료는 치뤄야겠지..'

옮겨 놓고 보니 얼핏 선문답같은 이 대화를 되새겨 보며 나는 두려워졌다. 지금 우리가 치루고 있는, 우리가 저지를 과오를 통한 배움의 댓가가 벌써 한참 지나치고도 남은 것 같음에도, 이게 끝이 아닐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몇 달 전 한국에 다녀왔을때, 오랫만에 만난 대학 동기언니에게 흘러가는 말처럼 물은 적이 있다. '혹시 언니가 뽑은 거 아니죠?'
부끄럽다며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답하던 동기언니는 자기는 뭐라 말할 처지도 못된다고 했었다. 그 놈이 그 놈이고 그 판이 그 판인 정치판이라 애당초 투표자체를 하러 가지도 않았다는 것. 그런데, 요즘 (정치에)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의무이자 권리인 투표를 하지 않고) 살아왔던 지난 날이 만든, '지금의 결과'가 정말 무섭고 또 후회스럽다며 내 앞에서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했다. 나도 어쨌든 부끄럽기는 마찬가지였으니, 우리 둘 다 서로에게 뭐라 말 할 처지가 아니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언제나 타향일 수 밖에 없는 이곳에서 내 문제만으로도 벅차 고향의 정치상황에 무반응했던 댓가를, 당장 눈앞에 놓인 삶의 문제들 때문에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던 댓가를 지금 우리 모두 함께 치뤄가고 있는것은 아닌가. '어쨌든 수업료는 치뤄야 할거다'라는 그 때 그 지인의 말이 요즘 그렇게 사무칠 수가 없다.
돌아가신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이뤄낸 민주주의, 자유, 권리-이 소중한 가치들을 나 역시도 지금까지 '내게 주어진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것이다.

언제까지 두고 봐야만 할까.. 어디까지 더 가봐야 할까.

이곳에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최소한의 그 곳!)를 찾을 수 있을 것인지 암담하고 절망적인 마음이지만, 그래도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님이 남기신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그 말씀에 믿음을 갖고 싶다.
동트기 바로 직전이 가장 어둡고 그 어둠이 있기에 빛이 더욱 찬란하다는 그런 말들에 희망을 갖고 싶다.



이런 어둠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주고 가신 김대중 대통령님!!
정말 감사합니다.
고단한 짐들 다 내려놓으시고, 이제는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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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My-ecoLife

My-ecoLife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My-ecoLife는 생태적인 삶과 삶의 방식에 대해 얘기하고, 그 경험을 나누는 블로그입니다.

My-ecoLife에는 다음과 같은 7가지 이야기 꾸러미가 있습니다:
   
    My eco Life
    My eco Kitchen
    My eco Garden
    My eco Medicine
    My eco ManuFactory
    My eco Cartoon
    My eco Idol
    My xtra Life

My eco Life에는:
생태적으로 살기에 관한 일반적인 도움글과 생태적인 삶을 살아가는 제 경험글이 들어있습니다.

My eco Kitchen에는:
채식을 바탕으로 하는 생태 요리 레시피, 그리고 음식문화와 관련 근래에 회자되고 있는 주제에 대한 제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My eco Garden에서는:
자연 친화적인 텃밭 가꾸기에 대해 이야기 하고, 또한 자연농, 삼림농업(Agroforestry), 퍼머컬쳐(Permacultur) 등과 같은 지속 가능한 대안 농업에 대해 탐구해 보려 합니다.

My eco Medicine에서는:
서양에서는 허브라고 하는 약용식물에 대한 이야기와 요가와 같이 건강을 위한 심신을 수련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My eco ManuFactory는:
스스로 만들어보는 수제 공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생태적인 D.I.Y(Do It Yourself) 화장품, 비누, 샴푸 등등 직접 만드는 과정을 담을 생각입니다.

My eco Cartoon:
이 공간은 제가 그린 생태적인 삶에 관한 짧은 만화나 삽화 등이 실리게 될 곳입니다.

My eco Idol:
말하자면 제 삶을 이곳까지 이끌어 준 여러 스승님들-주로 생태에 관련된 분야에서-과 그 분들이 쓰신 책 등을 소개하는 자립니다.

My xtra Life:
말 그대로 큰 주제인 '생태'와는 별 상관 없는 딴 이야기입니다. 직접 관련되지 않았지만 그냥 지나치기 아깝거나,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 혹은 흥미로운 다른 이야기들을 별도로 해 나갈 공간입니다.


각각 이야기 꾸러미들이 다 차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느리지만, 꾸준하게 나아가는 My-eco Life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방문하시는 모든 분들께 유익한 블로그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수정: 2010-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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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coLife인가?

Posted 2009/08/01 13:20

My-ecoLife이어야만 하는 이유

저는 생태적으로 사는 것이 우리의 미래와 이 지구를 위한 진정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매번 노력하고 시도하는데도 불구하고 미약한 인간인지라 가끔은(혹은 자주)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그 실수를 통해 또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이곳에서 여러분들, 그리고 이를 필요로 하는 다른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저는 '나의(my)' ecolife 블로깅을 시작하지만, 훗날 이 블로그가 '당신의, 그리고 우리의(our)' ecolife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왜 ecoLife인가에 대한 답으로 하워드 F. 리먼( Howard F. Lyma)이 쓴 책 "성난 카우보이"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이끌어 온 삶을 평가할 수 있을까? 물론 돈을 얼마나 모았는가, 얼마나 많은 물질을 소유했는가에 따라 삶을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돈이나 물질을 영원히 갖고 갈수는 없다.

또는 이렇게 자문을 할 수도 있으리라.
우리는 다가올 세대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전부 다 했는가?
우리가 태어났을 때보다 지금 나무가 더 많은가?
공기는 더 신선한가? 물은 더 깨끗한가? 농토는 더 비옥해지고 질이 좋아졌는가? 하늘에는 더 많은 새가 날고 바다에는 더 많은 물고기가 사는가? 야생세계에는 더 많은 짐승들이 있는가?
사람들은 더 건강하고 오래도록 삶을 영위하는가? 굶주림은 더 줄었는가? 질병과 고통은 줄어들었는가?
세상은 더 평화로운 곳이 되었는가?

갖고 갈수 없다면, 정말 중요한 모든 것은 뒤에 남기는 것이다."

마지막 수정: 2010-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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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고목을 오르다.

Posted 2009/07/02 17:46
'가내수공' 체리 수확단의 수확일지


사다리에 올라 체리따는 모습들.

▲ 사다리에 올라 체리따는 모습들. 2009 ⓒ 김미수


체리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독일에는 집에 과수가 있는데도 직접 수확하기가 귀찮거나, 연로한 나이 등의 이유로 과일이 바닥에 떨어져 썩도록 그냥 두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산책을 하다가 그런 나무를 볼 때면 정말 아깝고 안타깝다.

그래서
'그렇게 방치할 바에야 우리가 갖다 먹어도 되는지 집주인에게 한번 물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 때가 많다. 그러다가도
'아는 사람도 아닌데 거절하면 어떡하나, 바빠서 수확시기를 놓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이런저런 염려에 선뜻 물어보지 못하곤 한다.

얼마 전엔 남편과 함께 산책을 하다가, 체리가 길가 여기저기에 잔뜩 떨어져 있는 집을 발견했다. 올려다본 바로 10m는 족히 넘을 고목이었다.
'아까운 체리, 주인이 우리더러 수확해 가라고 하면 좋겠네' 싶었지만 우리끼리 얘기만 하고 그 집을 지나쳐 왔다.

며칠 뒤 이른 아침, 시 이모부님이 오셨다. 웬일인가 했더니 이웃집 정원에 큰 체리나무가 있는데 주인에게 허락을 얻었다며 시간이 되면 같이 체리를 따러 가자고 하셨다. 체리를 무척 좋아하는 우리 식구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흔쾌히 사다리와 양동이 등을 챙겨 들고 따라나섰다.
도착해보니, 엊그제 산책하며 지나친 바로 그 집이었다.


'저이, 진짜 사람이야 원숭이야'

체리따는 남편

▲ 원숭이를 방불케하며 이 가지 저 가지로 옮겨다니며 남편이 체리를 따고 있다. 하단 중앙, 10 리터들이 녹색 양동이가 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다. 2009 ⓒ 김미수

'우와 이런 우연이...' '빨리 사다리부터 연결하자.' 체리가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를 보고 신이 나서 재빨리 수확 준비를 했다. 워낙에 큰 고목이라 나무에 매달린 체리열매는 사다리 없이는 수확하기 불가능한 높이에 있었다.

70이 넘은 연세에도 혈기 왕성하신 아버님과 남편이 사다리를 타고 나무 위로 올라가 체리를 수확했다. 이모부님과 나는 그럴 재간은 없어 그 밑에 낮은 사다리를 놓고 체리를 땄다.

이쪽에서 또 다른 쪽으로 옮겨 가며 부지런히 체리를 따다 보니 아래쪽에는 더이상 체리가 남아있지 않았다. 내려와 잠깐 숨을 돌리다가, '나도 좀 높이 올라가서 체리를 따 볼까? 내친 김에 한번 해보지 뭐'하는 생각을 했다. 이내 겁도 없이 7m가 다 되는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우와 여긴 체리가 정말 많이 달려 있네.'


따고 또 따고… 가지고 올라간 양동이가 거의 다 찰 무렵, '뭐 높은데 올라오는 것도 별거 아니네' 하면서 별 생각 없이 밑을 내려다봤다. 그런데 그 순간 오금이 저리면서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졌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간신히 사다리를 내려와 한숨 돌리는데, 아버님과 남편은 아직도 나무 위에 있다. 한 두 번 정도 사다리 위치를 바꾸려고 내려온 것 외에는 한나절 내내 지칠 줄 모르고 계속 그 자리다.

'어려서부터 나무를 타고 놀았다더니, 참 경험이란 게 우습게 볼 것이 아니네.' 이런 내 생각을 빤히 들여다보기나 한 듯, 원숭이가 나무 타듯이 이 가지 저 가지로 옮겨다니며 체리를 따는 남편. '저이, 진짜 사람이야 원숭이야?'

사다리에서 내려다본 모습

▲ 아찔한 고공에서의 기억.7m가 다되는 사다리에 오르는 것도 별거 아니라며 별 생각없이 밑을 내려다 본 순간, 오금이 저리면서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졌다. 2009 ⓒ 김미수



체리 주스 생각에 벌써부터 겨울이 기다려진다

10리터 양동이 가득한 체리를 받고 있는 이모부님

▲ 밧줄로 묶어 지상으로 내려보낸 양동이를 이모부님이 받고 있다. 10리터 양동이가 그새 가득찼다. 2009 ⓒ 김미수


체리나무 주인댁에 양동이 하나 가득 드리고 이모네와 나누고도 4 양동이나 남았다. 이만하면 체리를 질리도록 먹고도 남겠다며 모두들 함박 웃음이다. 한나절을 줄곧 체리 따는데 매달려 있느라 좀 피곤하기도 했지만, 기대 이상의 결과를 보니 피로가 싹 가시는 듯했다.

한 번에 다 먹지 못하니, 좋은 것은 지하에 두고 생으로 먹고 나머지는 손질해서 주스나 쨈을 만들어 저장을 할거다. 그럼 이것들이 올해 긴 겨울을 나는데 중요한 비타민 공급원이 되겠지. 올겨울 난로 가에 앉아 따뜻한 체리 주스 한잔 마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겨울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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