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혀를 즐겁게 하는 것 외엔 우리 몸에 이로울 것이 없는 케이크 이야기

달콤한 유혹, 독일의 카페파우제(Kaffepause)

 

점심과 저녁 식사 사이 오후 3시 반에서 4시 반 , 독 일 사람들은 커피나 차 한잔(대부분 커피) 케이크를 곁들인 카페파우제(Kaffepause: 커피 휴식시간, 영 국의 티타임과 비슷하다.)를 갖는다. 개중에는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많은 독일인이 세끼 밥을 먹듯이 이 시간을 즐긴다. 주로 시댁에서 다른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명절에 등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와 남편은 평상시에는 따로 시간을 내어 카페파우제를 갖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생활 습관이자 독일 문화의 한 부분이라고 까지 말할 수 있을 카페파우제에 대해 내가 가타부타 한 소리 곁들일 깜냥은 못 되지만, 독일인이 매일같이 즐기는 이 시간이 적어도 건강에는 전연 이로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카페파우제가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게 하는 긍정적인 기능을 갖고 있음에도, 장기적으로는 개개인들에게 득보다 실을 안겨주는 문화가 아닐까.



순 식물성 재료로만 만든 비건 케이크

▲ 순 식물성 재료로만 만든 비건 케이크- '동물성 재료 없이도 얼마든지 맛있는 케이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겠다.'라는 사명감(?)으로 만들었다. ⓒ 김미수



혀를 즐겁게 하는 것 외에는 어디 하나 우리 몸에 이로울 게 없는 케이크


케이크란 음식은 주로 설탕과 밀가루(대부분이 백밀가루)에 지방을 범벅해 구워낸 것이다. 여기에 과일이며, 견과류 따위를 첨가해 만들지만, 이는 아주 적은 양에 불과하고, 대체로 이 세 가지가 주재료이다. 순전히 당(설탕과 밀가루)과 지방의 조합으로 열량이 많아, 이를 먹었을 때, 몸에 살을 붙이는 기능(?)을 하지만, 정작 우리몸 여러 곳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비타민, 무기질 같은 영양소는 별로 없다.

 

게다가 대부분 백밀에 백설탕을 써서 케이크를 많이 만들기 때문에, 치아에도 결코 좋을 리가 없다. 특히 백설탕 같은 단당은 먹는 즉시 몸에 흡수되어 짧은 시간 안에 혈당을 높이기도 하고, 몸 안의 무기질과 결합해 우리 몸에 필요한 무기질들을 몸 밖으로 버리게 는 등 해로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문화에 젖어들어서인지, 달콤함에 대한 본능적인 향수 때문인지, 나 역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주는 아니어도, 기회가 있다면 굳이 케이크를 마다하지는 않았다. 독일에 오기 전에도 고구마와 곶감을 넣어 비건(Vegan: 일반 채식인들이 먹기도 하는 달걀, 유제품 등을 포함한 모든 동물성 제품을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인. 어떤 비건 중에는 꿀을 먹는 이들도 있다.)용 빵과자 같은 것을 만들어 나눠 먹기도 했고(밀가루가 적게 들어가고 설탕은 아예 없으니, 그나마 좀 나은), 독일에 와서는 명절 때 시어머님께서 항상 우리를 위해 비건용 케이크를 구워 주시기도 하셔서 가끔 먹곤 했었다.

 

그런데 이 케이크라는 게 먹을 땐 달콤하니 맛있어서 자꾸 손이 가지만, 먹고 나면 늘 속이 더부룩하고는 했다. 또 한국에서  25년을 살면서 어릴 때 치아교정을 하는 동안 부주의로 생긴 앞니의 작은 부분을 제외하곤 충치라곤 모르고 살았는데, 언제부턴가 이에 충치가 생기기 시작했다. 너무 충격을 받은 나는 이제 다시는 케익 따위는 입에도 대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던 기억이 난다.

 

때마침 남편도 '혀를 즐겁게 하는 것 외에는 어디 하나 우리 몸에 이로울 게 없는 케이크를 더 이상 먹지 않겠다.'라며 내 의견에 동조해 줬다. 뭐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를 좀 풀어놓자면, 그동안 시어머님이 구우시던 커다란 오븐 한판의 양 중 남편은 정말 많이 먹어야  3-4 조각으로, 전체 케이크 중 절반은커녕 1/4도 먹지 않았다. 자동으로 그 큰 '케이크 한 판은' 늘 내 차지였다. 먹고 나서 유쾌하지 않은 기분에 '이젠 안 먹어야지.' 하고 생각했다가도, 다른 날 시간 맞춰 시어머님이 케이크를 내주시면, 그 달콤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때로는 남편이 먹지 않고 그대로 둔 접시까지 먹어치우곤 했다.

 

어쨌든 우리의 강한 의지 표명 덕에, 시어머니께선 더는 비건용 케이크를 굽지 않으신다. 나도 집에서 이제는 케이크를 만들지 않고. 다행히 외부 모임 같은 걸 가더래도, 보통은 비건을 위한 케이크를 따로 준비하지 않기 때문에 남편이나 나나 갈등 없이 차만 마시곤 한다. 이렇게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의식적으로 케이크를 먹지 않으려 노력해 왔다.


 

조금 덜 뻔뻔하든, 더 뻔뻔하든 간에 어쩔 수 없이 뻔뻔한 악마의(?) 음식, 케이크


<소박한 밥상>은 내가 늘 부엌 한 켠에 두고서 길잡이로 삼아 왔던 책이다. 나는 내 안에 뭔가 화려하고 (혀에) 맛있는 요리를 먹고 싶은 욕망이 솟구칠 때마다 이 책을 보았다. 헬렌 니어링은 에서 그녀가 반 페이지 짜리 요리법을 보고 구운 케이크의 맛이 너무 쾌락적이어서 '헬렌의 뻔뻔한 악마 케이크'라고 부르고, 이웃들에게 선물로 줘 버렸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한 번은 백밀가루와 설탕을 완전히 배제한 달콤한(?) 케이크-이어지는 글에서 소개하려고 하는 케이크와 동일한-를 만들어 보려고 시도해 본 적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는 이 실패한 케이크를 헬렌 니어링을 따라 '조금은 덜 뻔뻔한 악마 케이크'(설탕과 백밀가루라는 해로운 재료를 넣지 않았기 때문에)라고 불렀다. 실패한 요인이 내가 케이크를 구워본 경험이 미천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어떤 종류의 케이크는 설탕없이 굽는다는게 정말 쉽지 않은 일 같다. 어쨌든 그런 실패를 경험하고, 또 다시 <소박한 밥상>을 펼쳐 들고서는 '이제 다시는 케이크를 굽지 않겠다.'라고 다짐을 했다.

( 관련글  보기 - 조금 덜 뻔뻔한 악마케익이 준 교훈 )


 

케이크를 더 이상 먹지도, 굽지도 않겠다고 다짐했던 내가 손수 케이크를 굽다니......

-남편의 생일, 동료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케이크를 굽다.

 

그런데 독일에서 살다 보니 피치 못하게 직접 케이크를 구워야 하는 상황이 번번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곳 직장인들은 생일을 맞은 사람이 케이크를 구워와(혹은 사와) 동료와 함께 나눠 먹는다. 남편도 예외는 아니어서, 내 본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매번 케이크를 꼭 구워야 했다. 물론 어디에 규칙으로 지정된 의무사항은 아니고, 또 남편이 평소에 다른 이들이 가져온 케이크를 먹지 않기는 하지만(특별히 거부했다기보다는 대부분 케이크에는 달걀과 유제품이 들어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로 뻔히 생일이라는 걸 대충 알게 되는 상황에서 남편만 쏙 빠진다는 건 그다지 현명한 처사는 아니다.

 

또 비건들이 밥은 먹고 사는지, 혹은 사람이 어찌 맛도 없는 풀 쪼가리들만 먹고 살 수 있는지 (남편이 매번 답을 해 줘도) 늘 의아해한다는 남편의 동료들을 위해, 맛있는 비건 케이크를 구워 '동물성 재료 없이도 얼마든지 맛있는 케이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겠다.'는 강한 사명감(?)이 생겨났다.

 

이 케이크를 만들면서 크게 내 의지와 반대되는 2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첫째가 케이크를 구운 그 사실 자체, 둘째가 내가 쓴 재료가 내 의지와 다소 거리가 먼 것들이라는 문제이다. 내 케이크를 맛있게 드신 분들에겐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준비한 케이크는 헬렌 니어링 말마따나 사악함의 극치를 달린, 정말 '뻔뻔한 악마 케이크'였다.

 

물론 재료 대부분을 유기농으로 사서 쓰긴 했지만, 도무지 나와는 맞지 않는 순백의 재료-백밀, 백설탕을 썼기 때문이다. 비록 몸에 좋지 않은 케익일 망정 통밀가루(일부분이라도)에 정제하지 않은 유기농 공정무역 설탕(그다지 달지 않고 진한 갈색 빛이 나는)을 쓰고 싶었지만, 남편이 만류했다. '기껏 준비해 갔는데, 사람들이 안 먹으면 어찌하느냐?'.

 

남편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어차피 다른 이들 주려고 굽는 거니, 그들 입맛에 맞추자. 또 (혀에) 맛있는 비건 케이크를 구워야 하니, 가장 일반적인 방법을 쓰자.'

이런 생각으로 남편 동료들을 위해 순백의 이스트 반죽에 자두와 소보루를 얹은 생일 케이크를 구워 봤다.

 


이어지는 글-

케이크 먹기를 그만 뒀던 내가 케이크를 직접 굽다니..

, 남편 생일을 맞아 굽게 된, 순 식물성 소보루 자두 케이크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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