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 홍옥, 아오리 사과.
가만 떠올려 보니, 한국에서 20년 넘게 살면서 먹어봤던 사과의 종류가 고작 세 네가지 밖에 안 되는 것 같다.
전세계에는 2천여종의 사과가 존재한다는데, 시장에는 상품성, 수익성 등의 이유를 들어 아주 제한된 가짓수의 사과들만 유통되고 있다. 독일의 시장에는 우리 나라 보다는 조금 더 많은 종류의 사과가 판매되고 있긴 하지만 역시나 제한적이긴 마찬가지다.
 

▲ 두 세 그루 함께 있는 길가의 사과나무. 2008 ⓒ 김미수 ▲ 두 세 그루 함께 있는 길가의 사과나무. 2008 ⓒ 김미수

                
우리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 이곳 Gerbach에는 여기 저기(길가, 밭가 등등) 과일 나무, 특히 사과 나무가 많다. 비단 우리마을 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근의 다른 마을들도 둘러보면 다들 비슷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수확하는 사람이 없어 사과가 땅에 떨어져 썩어나고 있다.
예전에 살던 베를린 근처 도시 Eberswalde에서도 그랬고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얼마전에 통화한 지인의 말로는 그 분 동네도 마찬가지란다. 심지어 지인이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자기네 텃밭의 사과도 수확하지 않아 썩게 두거나, 가축의 먹이로 준다면서 너무 안타깝다고 한다.

▲ 수확하지 않아 바닥에 떨어져 썩어가고 있는 사과들. 2008 ⓒ 김미수▲ 수확하지 않아 바닥에 떨어져 썩어가고 있는 사과들. 2008 ⓒ 김미수


몇 년 전엔가 청계천에 심은 사과 나무의 사과를 밤사이 누군가 몽땅 도확(盜攫)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때마침 그 해가 사과 값이 비쌌던지, 누군가는 나무에 달린 싱싱하고 값 나가는 사과가 탐이 났던 모양이었다. 그 기사를 떠올리고 지천에 떨어져 있는 사과를 보면서, '우리 나라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썩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을 해 보니 '사과 값이 우리나라처럼 비싸도 이곳 사람들이 사과를 이렇게 썩도록 내버려 둘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도 상대적으로 비싼 호두같은 것들은 기다릴 새도 없이 너나할 것 없이 다들 수확해 버리니 말이다.

▲ 나무 위에 탐스럽게 달린 사과들. 2008 ⓒ 김미수▲ 탐스럽게 달린 사과들. 2008 ⓒ 김미수

안타깝게도 싸고 흔한 것들은 그것이 가진 본래의 가치에 대한 대우를 제대로 못받는 경우가 많다. 이 곳의 사과처럼 말이다.
사과는 비타민, 섬유소가 풍부하고, 보관도 용이해 두고 두고 특히 겨우내 저장해 놓고 먹을 수있는 사랑스런 과일이다. 영어 속담에 하루 한알 사과를 먹는 이에게는 의사가 필요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독일의 농부들은 소농이라고 해도 대부분 최소 십 헥타르에서 많게는 몇 백, 몇 천 헥타르나 되는 농지를 경작하기 때문에-말하자면 대량생산- 사과 뿐만 아닌, 다른 농산물 가격도 싼 편이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은 허리를 숙여 봉지에, 바구니에 사과를 주워 담는 번거로움과 수고스러움을 치르는 대신, 자동차를 타고 마트에가서 진열대에 놓인 사과 한 팩을 골라 장 바구니(쇼핑카트)에 담아 넣는 것을 더 선호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과를 언제까지나 썩게 둘지 두고 볼 문제이다. 오일 파동 등으로 비료, 농기구용 연료비 등의 가격이 계속 치솟는다면, 당연히 농산물 전반의 가격도 치솟될 날이 올 것이다. 아니 이미 이런 현상은 시작되었고 점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이 끝이 어디인지, 언제가 될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언젠가 때가 되면 이곳 사람들도 사방 천지인 사과 나무에 감사하고 또 수확하게 되지 않을까.

그때까지 당분간 이곳 사과는 우리 가족 독차지가 될 것 같다. 우리 식구 먹기에는 그 양이 너무 많아 수확한 것보다 떨어진 채 그대로 둔 사과들이 훨씬 많긴 하지만.

   ▲ 비슷한 듯하면서도 모양도 빛깔도 다들 조금씩 다 다른 사과들. 2008 ⓒ 김미수▲ 비슷한 듯하면서도 모양도 빛깔도 다들 조금씩 다 다른 사과들. 2008 ⓒ 김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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