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고백

Posted 2009.08.23 22:22
-떠나신 김대중 대통령님을 기리며...

2009년 8월18일

"한국의 예전 대통령 김대중씨가 어제 병원에서 향년 85세의 일기로 숨을 거뒀다. 사인은 ...."
아침 준비 중 별 생각없이 듣던 라디오에서 '한국'과 '김대중'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이 멈춰 졌다.
'무슨 소식일까... 설마! 아니 그럼 안 되는데... 아, 어떻해......' 
문장의 끝을 듣기 전의 그 짧은 사이가(주어에 동사가 따라붙는 그 짧은), 다음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던- 그 침 꼴깍하는 사이가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 없었다.
외신임에도 뉴스 첫머리에 전하는 소식이라 나도 모르게 서거 소식일 수도 있을 거란걸 짐작하고 있었지만, 속으론 내 짐작이 사실이 아니길... 정말 그것만은 아니길 바라고 또 바랐다.
 
어쩌면 나는 지금 한국의 모습에 부채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국 나이론 내 나이가 올해 서른 하나이니, 내가 투표권을 갖게 된지 10년 가까이 되었다. 지역구 선거, 시장 뭐 이런 그나마 자잘한 선거 몇번 투표를 해 본 적이 있지만, 부끄럽게도 이제껏 나는 단 한 번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참여해 본 적이 없다.


1997년 말
정권이 바뀌던 그 해, 나는 고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정말 투표를 하고 싶었지만,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시기. 정치에 대해 별로 알지도 못하고, 그리 많은 관심이 있진 않았지만, 정권이 바뀌었고, 정말 민주적으로 제대로 된 (결과가 조작되지 않은) 선거가 치뤄졌고, 또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김대중님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 올랐었던 기억이 난다.


2002년 말
그 역사적인 순간에도 나는 한국에 없었다.
나는 2002년 두 학기를 모두 휴학하고, 인도에서 자원 활동(Volunteering)을 한 후, 유럽으로 갔었다. 남자 친구(지금의 남편)와 영국에 있는 유기농 생태 프로젝트에서 같이 실습을 한 후, 일정을 연기해 독일에 있는 남자친구 집에서 묵고 있었다. 당시 내 머리속엔 대통령 선거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었다. 휴학을 하고 외국에 나온 이상, 되도록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게다가 서로 다른 나라에 살다보니, 나는 당시 남자친구와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개강을 하기 전까지 되도록 오래 함께 있고 싶어, 원래 일정보다 좀더 오래 유럽에 머물게 되었다.

식사 중이었나, 식사 준비 중이었나.. 여튼 부엌에서 텔레비전을 켜놓고 뭔가를 하고 있는데, 노무현 대통령 당선 모습이 화면에 나왔다. 주위의 노란 물결과 함께 사람들이 너무 기뻐하는 그런 모습과 화면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기억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뒷배경도 없고,  엄청난 자산가도 아니며, 그냥 우리들 중의 하나인 것 같은 그런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다니...'
정말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의 수준이 그 정도라는 것이 너무 자랑스러웠었다. 나는 투표를 하지 못했지만, 나를 대신해서 그런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국민들이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던 그 해 나는 독일에 있었다. (2005년 이후 나는 결혼해 독일에서 살고 있다.) 그 당시 나는 남편이 직장을 옮기고 이사를 하고, 뭐 이런 것들로 분주해 역시 선거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독일에 온지 여러 해가 지났고, 가족들이 보고 싶기도 했지만 꼭 당장 한국에 가야만 하는 이유는 없었다. 무작정 선거만을 이유로 다 접고 한국에 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끔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를 읽으며 대충 돌아가는 추이만 지켜 봤었다. 그런데 모든 다른 이유를 불문하고 어쨌든 독재자의 딸이 정당(그것이 아무리 극우정당이라고 하더라도)의 대표가 된 것, 그리고 결국 대통령 후보 경합까지 벌인 것 등 정말이지 믿고 싶지 않은 일들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한국과 독일의 거리 때문에 투표도 하러가지 못하는 입장이고, 한국 밖에 나와있는 상황이라 나는 뭐라 말할 자격도 없는지도 모르나 너무 답답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한숨만 나오던 때, 이명박 씨의 대통령 당선 소식에 나는 정말 어디에 뭐라 말도 못하고 기가 막힌 심정이었다.


이후 한 지인과의 통화에서 나는 마치 항의 하듯 따져 물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죠?(어쩜 이런 선거 결과가 나올수가 있느냐)'
'어쨌든 수업료는 치뤄야겠지..'

옮겨 놓고 보니 얼핏 선문답같은 이 대화를 되새겨 보며 나는 두려워졌다. 지금 우리가 치루고 있는, 우리가 저지를 과오를 통한 배움의 댓가가 벌써 한참 지나치고도 남은 것 같음에도, 이게 끝이 아닐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몇 달 전 한국에 다녀왔을때, 오랫만에 만난 대학 동기언니에게 흘러가는 말처럼 물은 적이 있다. '혹시 언니가 뽑은 거 아니죠?'
부끄럽다며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답하던 동기언니는 자기는 뭐라 말할 처지도 못된다고 했었다. 그 놈이 그 놈이고 그 판이 그 판인 정치판이라 애당초 투표자체를 하러 가지도 않았다는 것. 그런데, 요즘 (정치에)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의무이자 권리인 투표를 하지 않고) 살아왔던 지난 날이 만든, '지금의 결과'가 정말 무섭고 또 후회스럽다며 내 앞에서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했다. 나도 어쨌든 부끄럽기는 마찬가지였으니, 우리 둘 다 서로에게 뭐라 말 할 처지가 아니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언제나 타향일 수 밖에 없는 이곳에서 내 문제만으로도 벅차 고향의 정치상황에 무반응했던 댓가를, 당장 눈앞에 놓인 삶의 문제들 때문에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던 댓가를 지금 우리 모두 함께 치뤄가고 있는것은 아닌가. '어쨌든 수업료는 치뤄야 할거다'라는 그 때 그 지인의 말이 요즘 그렇게 사무칠 수가 없다.
돌아가신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이뤄낸 민주주의, 자유, 권리-이 소중한 가치들을 나 역시도 지금까지 '내게 주어진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것이다.

언제까지 두고 봐야만 할까.. 어디까지 더 가봐야 할까.

이곳에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최소한의 그 곳!)를 찾을 수 있을 것인지 암담하고 절망적인 마음이지만, 그래도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님이 남기신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그 말씀에 믿음을 갖고 싶다.
동트기 바로 직전이 가장 어둡고 그 어둠이 있기에 빛이 더욱 찬란하다는 그런 말들에 희망을 갖고 싶다.



이런 어둠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주고 가신 김대중 대통령님!!
정말 감사합니다.
고단한 짐들 다 내려놓으시고, 이제는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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