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농사를 짓겠어요

Posted 2016.05.04 14:01
독일댁의 생태적인 삶]

- 도시 속 자투리땅에도 씨 뿌리고 기른다 (글 전문 보기)




이때쯤 독일의 가든마트와 재래시장 등에는 온갖 봄꽃과 모종, 묘목들이 대거 진열된다. 다양한 형태의 텃밭과 정원 문화가 있어 각종 화분의 수요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아기자기하게 잘 가꿔져 전체적으로 공원을 떠올리게 하는 묘지가든에서부터 조직화된 시점만 따져도 19세기 중반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그 역사가 깊은 슈레버가르텐까지.[각주:1] 다양한 텃밭의 특징과 농사법을 알아보자.


_ 사진 김미수


▲ 꽃가게에서 집 발코니에 심을 봄꽃 화분을 고르고 있는 한 여성의 모습. 도심 한복판에 살아 텃밭농사를 지을 만한 공간이 없는 이들은 발코니에 작은 정원을 만든다. ⓒ 김미수


도시를 숨 쉬게 하는 농사

독일의 공동묘지는 주택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남편을 따라 처음 시할아버지 묘를 찾았을 때, 봉분 없이 평평하고 조용한 공원 같은 분위기에 좀 놀랐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새로 이사한 도시에서 산책 중에 공원인가 싶어 들어갔다가 늘어선 비석을 보고 공동묘지란 걸 알게 된 경험도 있다. 독일의 묘지 단장 문화는 좀 독특해서, 개인당 할당 규모는 약 1~3㎡ 정도로 작지만 상록수와 꽃으로 장식하거나 철마다 꽃을 심어 예쁘고 정갈하게 정원처럼 관리한다.


우리의 주말농장과 비슷한 게 ‘슈레버가르텐’인데, 거주지 근처에 있어 도시의 녹색 폐 역할을 하고 있다. 부지 운영을 맡는 지역의 작은가든연합에서는 큰 면적의 전체 부지를 땅주인에게 장기 임차한 후 작은 면적으로 구획을 나눠 시민들에게 임대하는 중간자 역할을 하는데, 새로운 임대자나 농장 부지를 찾는 과정은 임대자 간 직거래로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2008년 발표된 독일연방 건설및지역계획청과 교통건설도시발전부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작은정원연합 연회비, 전기 및 수도 사용료, 보험, 공동 쓰레기 처리비 등을 포함한 임대사용료 총액 평균은 연간 276유로(약 35만 8천 원)이다. 슈레버가르텐의 평균 임대 면적은 370㎡로[각주:2], 보통 가든하우스가 하나쯤 딸려 있어 주말 별장처럼 쓰이기도 한다. 지인 중에는 슈레버가르텐을 너무 좋아해 아예 여름철 내내 거주하는
이도 있다.


이외에도 퍼머컬처같이 지역 내 특화된 단체나 지역사회지원농업(CSA)을 하는 농가에서 일부 경작지를 시민에게 임대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유기농으로만 경작하도록 하는 등 특별한 규제가 있기도 하다. 또 도심 한복판에 살아 텃밭농사를 지을 만한 경작지가 마땅치 않거나 장기 임대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발코니에 크고 작은 화분을 이용해 작은 정원을 조성하거나 집 주변 빈 땅에서 운반 가능한 플라스틱 상자에 작물을 키워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이동텃밭을 꾸리기도 한다.


직접 만든 퇴비와 액비로 받은 만큼 돌려준다

마당이 있는 집이라면 대부분 하나쯤 있는 게 퇴비더미다. 독일은 생분해성 쓰레기를 직접 처리하는 가정으로 시에 등록하면 쓰레기 처리비용을 줄일 수 있다. 퇴비더미는 소금기가 많은 음식물쓰레기 대신 미생물 분해에 무리가 없는 정원 및 부엌 찌꺼기를 넣어 쌓는데, 잘 숙성시키면 질 좋은 흙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만든 퇴비는 영양가가 많아 거름 역할도 한다.


이때쯤 판매고가 훌쩍 뛰는 제품 중 하나가 바로 시판 흙이다. 보통 10~35L 크기로 포장 판매하는 화분 흙은 보슬보슬하니 배습성이 좋은 가벼운 성분이다. 이런 점 때문에 독일에서는 습지축적토인 이탄토가 화분 흙 제조용으로 오랫동안 무분별하게 채취되어 왔다. 다행히 지난 몇 년간 이로 인한 습지 훼손과 온실가스 방출 등 환경영향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어 왔고, 현재 이탄토 성분이 없는 화분 흙이 개발되어 판매도 늘고 있다.


대부분 농부에게는 거름을 어떻게 줄지가 최대 관심사다. 사실 답은 간단하다. 내가 텃밭에서 받아 먹은 딱 그만큼만 퇴비나 자연멀칭으로 되돌려 주면 된다. 단, 그만큼 되돌리지 못했을 때 생기는 결핍이 문제다. 이를 해결하거나 예방하려고 비료를 많이들 쓰는데, 과도하게 쓰면 화를 부르기도 한다. 비료 과다 사용 때문에 인근 냇물·지하수 등이 오염되고, 질소비료 과다 사용 때문에 질산염 함유 농도가 높아진 작물을 먹을 경우 발암 가능성[각주:3] 등이 있기도 하다. 따라서 아무리 좋은 유기비료라 할지라도 적정량을 아껴서 주어야 한다.


퇴비 외에 독일식 액비인 ‘야우헤’를 직접 만들어 쓰는 독일 텃밭농부들이 여전히 많다. 재료는 텃밭 주변 야생초인 쐐기풀과 컴프리, 그리고 물이 전부이다. 한국에도 자생하는 쐐기풀과 컴프리는 자연멀칭 재료로도 쓰이는데, 쐐기풀은 질소 함유량이 높고 컴프리는 작물에 두루두루 도움이 되는 세 가지 주요 영양소를 모두 함유하고 있어 특히 거름으로 가치가 높다.

 

▲ (왼쪽) 아기자기하게 잘 가꾼 묘지. 자투리 공간만 있으면 무엇이든 심고 기른다. (오른쪽) 마트 등 시중에서 판매되는 화분 흙. 포장에 ‘이탄성분 없는흙(Torffreie Erde)’이란 광고문구가 써 있다. ⓒ 김미수

 

텃밭은 쉬고 배우고 일하고 노는 곳

내가 지금 사는 집은 전체 부지가 1ha 정도로 매우 넓은데, 집주인에게 허락을 받아 정원 한구석에 텃밭을 만들었다. 오년 넘게 텃밭을 가꾸는데, 신선한 식재료를 그때그때 바로 수확해 먹을 수 있어 편리할 뿐만 아니라 텃밭에서 얻는 안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비록 먹을거리를 100% 자급자족하거나 우리 부부의 이상향인 숲 텃밭을 제대로 실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지만 지금 코앞에 자리한 텃밭은 선물 같은 곳이다.


우리 집 텃밭농사는 보통 1월 중순에 토마토·파프리카·멜론 등 생장 후 과숙까지의 기간이 긴 몇몇 작물 모종을 준비하면서 시작한다. 독일엔 5월 중하순에도 마지막 서리가 내리고 해마다 거의 10월 초면 된서리가 내려 작물 생장 가능 기간이 비교적 짧기 때문이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거의 없게 되면 노지에 씨뿌리기를 시작할 수 있다. 기후변화에 따라 날짜가 들쑥날쑥하지만 이르게는 보통 2월 중순부터 3월 초 본격적으로 텃밭농사가 시작된다. 냉해에 민감하지 않은 루꼴라·상추·방울무·완두콩·누에콩과 녹비식물인 겨자·크레세를 뿌리고, 가을에 모아 둔 낙엽을 잘게 부순 것과 지난해에 땅을 덮었던 작물의 덩굴줄기 마른 것 등으로 자연멀칭을 해 둔다. 해마다 텃밭에 다년생 작물과 겨울작물의 비율이 늘고 스스로 씨를 뿌리는 작물 종류도 많아져서 갈수록 초봄농사 준비가 수월해지고 있다.


독일 텃밭농부들은 샐러드 채소, 양배추·콜라비·무·단호박 등 채소, 주식인 감자와 콩류, 파스닙·샐러리 등 수프용 뿌리채소, 양파·대파 등 양념거리, 파슬리·바질·딜 등 허브를 많이 기른다. 우리도 마찬가지인데, 같은 작물이라도 기왕이면 독특한 종류로 특히 옛 종자와 다년생 종을 구해다 기른다. 또 잊혀져가는 들도 하나씩 시도하며 우리 입맛과 텃밭 생태에 맞는 작물을 즐거이 찾아 나가고 있다.


우리 부부에게 텃밭은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물을 제공하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일상에 찌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영혼의 휴식처이며,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배움의 장소이다. 꼼지락꼼지락 은근한 노동으로 땀 흘리며 놀 수 있는 놀이판 그리고 미래의 꿈을 준비하고 실현해가는 꿈 공작소이자 우리가 뿌리내리고 살 수 있도록 받쳐 주는 대지이다.



↘ 김미수 님은 2005년 독일로 건너가 ‘조금씩 더 생태적으로 살아가기’에 중심을 두고 냉장고 없는 저에너지 부엌을 시작으로 실내 퇴비화장실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또 먹을거리를 직접 가꾸는 등 좀 더 지속가능하고, 좀 덜 의존적인 생태 순환의 삶을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my-ecolife.net에 이런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에서 만드는 월간지 <살림이야기> 47호 2016년 4월호 46~47쪽에 실린 글입니다. 2016년 첫호부터 '[독일댁의 생태적인 삶]'이란 꼭지명 아래 독일에서 겪는 생태적인 삶과 독일내 생태˙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살림이야기 측에서 동의해 주신 덕분에 2016년 2월호가 발간되면서 이 글을 My-ecoLife에도 전문 공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살림이야기 홈페이지에 가시면 과월호의 다른 모든 내용도 보실수 있습니다.

Link: [살림이야기]


 참고 자료 


  1. BDG-Arbeitsgruppe „Entwicklung des Leitbildes“, "ES GIBT UNS AUS GUTEM GRUND - Leitbild des DBG", Bundesverbandes Deutscher Gartenfreunde e. V. [본문으로]
  2. Martina Buhtz et al., "Forschungen Nr.133 - Städtebauliche, ökologische und soziale Bedeutung des Kleingartenwesens (Forschungen Heft 133)", Bundesamt für Bauwesen und Raumordnung (BBR) & Bundesministerium für Verkehr, Bau und Stadtentwicklung (BMVBS), Selbstverlag(2008) [본문으로]
  3. BFR Bund. "Rucola may contain very high levels of nitrate", www.bfr.bund.de(2005.2.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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