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발전의 꿈

Posted 2016.03.04 00:04

[독일댁의 생태적인 삶]

-‘2022년까지 완전 탈핵을 이루려면 (글 전문 보기)




핵의 피해와 끔찍함을 머릿속으로만 짐작하던 내가 핵 위험이 우리 삶 속에 얼마나 가까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피부로 느끼게 된 건, 2006년 개봉한 독일 핵 재난 영화 <구름(die Wolke)>을 보면서부터이다. 핵 사고가 얼마나 순식간에 발생할 수 있는지, 그로 인해 얼마나 광범위하게 위험이 퍼져 나갈 수 있을지,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탈출하려는 사람들의 집단 이기심과 혼란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리고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잔인하게 파괴되는지. 간접적으로나마 핵 사고를 경험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_ 사진 김미수



풍력발전기 & 화력발전소▲ 환경 및 건강 비용을 모두 고려한 가격 계산 결과 현재 유럽 내 제일 싼 에너지는 풍력에너지라고 한다.(Küchler, 2015) 풍력발전기 뒤 기후변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배출해 내는 화력발전소가 대비를 이루고 있다. ⓒ 김미수


2000년 이미 탈핵에 합의했으나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야 탈핵 선언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일어난 지 약 세 달 만에 독일 메르켈 총리는 2022년까지 완전한 탈핵을 선언했다. 당시 한국 언론들은 이를 두고 용기 있는 결단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부부를 포함한 많은 독일인들은 ‘그나마 이제라도 결정을 되돌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 독일 국민의 80%가 이 결정에 찬성했고, 심지어 45%의 사람들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너무 느리다는 급진적인 의견을 갖고 있었다.(독어판 위키피디아, "Energiewende nach Staaten") 왜 독일 안팎의 온도가 이렇게 달랐을까? 독일 국민이 유별나게 생태적이라서? 이 결정이 마무리되기까지의 과정을 한번 들여다본다면 당시 분위기를 절로 납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일 핵발전의 역사는 1962년 전력 생산을 위해 핵발전소를 처음 가동하면서 실질적으로 시작된다.
(독어판 위키피디아, "Liste der Kernreaktoren in Deutschland")  1970년대 세계적인 석유파동으로 독일 내에서도 핵에너지와 환경문제가 이슈화되면서, 1983년 독일 녹색당이 의회에서 ‘즉각 탈핵’을 요구했다. 그 후 사민당도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이후 이에 동참하면서 본격적으로 탈핵 논의가 시작된다. 2000년 슈뢰더 총리 내각인 사민-녹색당 연합정권은 단계적인 탈핵(2020년경 마지막 핵발전소 폐쇄)과 함께 장기적으로 에너지 시스템을 재생에너지로 교체하기로 합의했다. 또 재생에너지법을 채택함으로써 재생에너지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다.

그런데 메르켈 총리 내각인 기민-사민당 연합정권은 이미 제정된 탈핵 사안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다. 2010년 합의안에 따라 핵발전소 가동기간은 최대 14년 더 연장되었고, 마지막 핵발전소 폐쇄는 2030년대 말 어느 즈음으로 미뤄졌다. 그러던 중 그나마 다행이라면 2011년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독일 정부에서 ‘핵 모라토리엄(유예)’을 선언하고, 2022년까지 독일 내에서 완전한 탈핵을 이루고자 의회에서 핵 관련 법안을 개정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핵 관련 개정 법안’은 2000년 슈뢰더 총리 내각 당시 결정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독어판 위키피디아, "Energiewende nach Staaten") 속사정이 이러하니, 탈핵 사안을 번복했다 결국 되돌리면서 10여 년 전과 별다를 바 없는 개정안을 들고 나온 정부의 행보에 독일 국민 누구나 속이 터지지 않았을까.

 

탈핵 대신 화력발전? 그건 아니지!

독일 정부의 ‘에너지콘셉트 2050년 계획’을 보면 2050년도까지 전력 생산 비율을 핵에너지는 0%, 화력에너지는 20%로 각각 줄이고 재생에너지는 80%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이다.(Bundesregierung, 2010) 그런데 2015년 독일의 실제 전력 생산 비율을 보면 핵에너지는 14.1%로 지난 10년간 12.1% 줄어든 것과 달리, 석탄과 갈탄을 원료로 하는 화력에너지는 41.9%4.4%밖에 줄지 않아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AGBE, 2016) 더 나아가 ‘석탄 붐’이라고 할 만큼 근래 들어 화석연료를 사용한 발전 경향이 도드라지게 늘고 있다. 석탄 붐이라는 말이 갑자기 생겨난 유행이란 느낌을 강하게 주지만, 어쩌면 정부 차원에서 계획하고 준비해 온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탈핵을 위한 일종의 차선책으로서.


독일은 2022년까지 완전한 탈핵을 하기로 한 데 따라 핵발전소가 점차 폐쇄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오히려 해마다 전력 생산량이 남아돌아 전기를 주변국에 수출할 정도이다.(
Mestmacher, 2014; Bundesregierung a) 그런데도 기업의 로비 때문인지 지난 몇 년간 독일에선 계속 새로운 화력발전소의 설립 허가가 났다. 지난해 10월 거대 에너지 기업인 에르베에, 바텐팔, 미브라크와 경제에너지부에서 공동으로 발표한 갈탄발전소 폐지 관련 법안이 심의 중이고, 올해 시행 예정이라고 한다. (주독일대사관, 2015) 하지만 과연 지금까지의 석탄 붐이 수그러들고 친환경적인 재생에너지로 변환이 가속화될지, 아니면 또 다른 눈속임에 불과할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우리 집에서 지난 몇 년간 사용하고 있는 미니 햇빛 발전판과 다양한 배터리▲우리 집에서 지난 몇 년간 사용하고 있는 미니 햇빛 발전판과 다양한 배터리. 이 정도면 웬만한 태블릿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같은 전자기기들은 충분히 충전하고도 남는다. 게다가 햇빛에너지는 깨끗하고, 지속가능하고, 무료다! ⓒ 김미수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 선택해 쓰고 햇빛으로 자가 발전

독일에서는 소비자가 전력 공급자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데, 우리 집은 프라이부르크 시의 에베에스(EWS: ElektrizitätsWerke Schönau)에서 전력을 공급받고 있다. 에베에스는 체르노빌 사고 이후 1986년 핵 없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프라이부르크의 시민과 활동가들이 함께 세운 단체이다. 이곳은 독일 거대 에너지 기업들과 달리 100% 친환경 재생에너지만을 공급한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후로 그린피스에너지를 포함한 친환경 에너지 공급 단체들이 많이 생겨났다. 거대 기업도 재생에너지 생산에 뛰어들며 기업 이미지 변화에 힘을 쏟고 있지만, 여전히 화력에너지와 핵에너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실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하는 우리를 두고 “말이 좋아 친환경 에너지이지, 결국 너희가 쓰는 전기도 핵발전소에서 나온 것 아니냐?”고 냉소하는 사람도 있다. 일단 모든 전력 공급자들이 생산하는 전기를 한곳에 모아 수요자 각각의 가정으로 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가 발전을 하지 않는 이상, 우리 집에 들어오는 전기가 ‘정확히 어떤 발전소에서 온 것인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집 전기 공급자를 재생에너지 공급자로 정하면 결국 독일 전력 생산에서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

친환경 전기를 공급받아 쓰고 있지만, 우리 부부는 오랫동안 자가 발전의 꿈을 간직해 왔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독일 곳곳으로 이사를 다니며 셋집살이를 전전한 처지라 주택에 터를 잡고 사는 이들처럼 안정적으로 에너지 자급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셋집이라도 텃밭도 부쳐 먹을 수 있고 마당도 넓어서 에너지를 자가 발전하겠다는 꿈이 아주 멀지만은 않게 됐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중고로 햇빛 발전판과 배터리 등 필요한 물품들을 하나 둘씩 구입하며 찬찬히 준비해 왔다. 이르면 올 봄이나 여름 이내로 우리의 오랜 꿈이 현실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렇게 본격적인 자가 발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외에도 요새는 작지만 성능 좋은 햇빛 발전판 하나로 자질구레한 전자기기들을 충전해 쓰고 있다. 이런 패널 하나면 한여름은 물론이고 겨울철에도 맑은 날엔 웬만한 태블릿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은 충분히 충전하고도 남는다.

핵폐기물 처리비용, 유해가스 배출에 따른 환경 부담금 등 핵발전과 화력발전 속에 숨어 있는 우리가 지불해야 할 진짜 가격을 생각하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각 도시와 마을, 회사와 가정이 주체가 되어 계절과 날씨에 따라 탄력적으로 에너지를 직접 생산해 내는 ‘탈중앙 지역 발전’에 우리의 진정한 미래가 있다.


↘ 김미수 님은 2005년 독일로 건너가 ‘조금씩 더 생태적으로 살아가기’에 중심을 두고 냉장고 없는 저에너지 부엌을 시작으로 실내 퇴비화장실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또 먹을거리를 직접 가꾸는 등 좀 더 지속가능하고, 좀 덜 의존적인 생태 순환의 삶을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my-ecolife.net에 이런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에서 만드는 월간지 <살림이야기> 45호 2016년 2월호 44~45쪽에 실린 글입니다. 2016년 첫호부터 '[독일댁의 생태적인 삶]'이란 꼭지명 아래 독일에서 겪는 생태적인 삶과 독일내 생태˙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살림이야기 측에서 동의해 주신 덕분에 2016년 3월호가 발간되면서 이 글을 My-ecoLife에도 전문 공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살림이야기 홈페이지에 가시면 과월호의 다른 모든 내용도 보실수 있습니다.

Link: [살림이야기]


 참고 자료 



<독일 탈핵 역사>

Bundesregierung a, "Bundesregierung beschließt Ausstieg aus der Kernkraft bis 2022", www.Bundesregierung.de, (검색일 2016.1.12),

"Merkels Atom-Moratorium: Sieben Kernkraftwerke gehen vorerst vom Netz.", faz, 2011 3 11

독어판 위키피디아. "Energiewende nach Staaten", de.wikipedia.org, (검색일 2016.1.13)

독어판 위키피디아. "Laufzeitverlängerung deutscher Kernkraftwerke", de.wikipedia.org, (검색일 2016.1.13)

독어판 위키피디아. "Liste der Kernreaktoren in Deutschland", de.wikipedia.org, (검색일 2016.1.13)  

 

<독일 에너지 정책 ∙ 통계∙수치>

Bundesregierung (2010.9.28) " Energiekonzept 2050  (Energiekonzept für eine umweltschonende, zuverlässige und bezahlbare Energieversorgung)", www.bundesregierung.de

AGEB(Ag Energiebilanzen e.V.) (2016.1.28) "Bruttostromerzeugung in Deutschland ab 1990 nach Energieträgern", www.ag-energiebilanzen.de

주독일대사관 (2015.10.30) "63.독일 정부 에너지업계간 노후 석탄발전소 퇴출합의", deu.mofa.go.kr

 

<에너지원별 진짜 전기가격 비교>

Swantje Küchler & co. (2015) "Was Strom wirklich kostet - Vergleich der staatlichen Förderungen und gesamtgesellschaftlichen Kosten von konventionellen und erneuerbaren Energien", Greenpeace Energy eG & Forum Ökologisch-Soziale Marktwirtschaft e.V. (FÖS)

 

<화석에너지, 석탄붐>

Christoph Mestmacher (2014) <Die Rückkehr der Kohle>, NDR Dokumentation

독어판 위키피디아. " Kohleausstieg", de.wikipedia.org, (검색일 201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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