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나 허투루 버리는 열 없이

2017. 2. 9. 22:48My-ecoVehicle+Energy

[독일댁의 생태적인 삶]

-생태적으로 난방하기(글 전문 보기)


한국과 다른 독일의 난방 문화는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부분이다. 독일인들은 낮에만 난방을 하고 자기 몇 시간 전에 히터를 끈다. 시어른들은 한겨울에도 침실에는 난방을 하지 않는단다. 심지어 누군가는 “잠잘 때 적정 온도는 12℃”라는 말로 나를 경악하게 만든 적도 있다. 추워서 잠을 어찌 자느냐는 내 질문에 독일인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워 있으면 금방 따뜻해지고 또 잠이 들면 추위를 느끼지도 못하는데, 쓸데없이 난방을 해서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 한 지인은 “한국에서 나고 자라다 독일에 온 아이는 독일식 잠자리에 추워 떠는데, 독일에서 태어난 아이는 잘 때 따뜻하면 오히려 답답해서 칭얼거린다”며 적응 시기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한다. 이제는 나 때문에 어느 정도 따뜻하게 자는 데 익숙해진 독일인 남편도, 한국에서처럼 뜨끈한 환경에서는 쉽게 잠들지 못하는 걸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글 _ 사진 김미수


▲ 재작년 발생한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가 쌓여 있는 모습. 갑작스러운 이상기후로 인근 숲의 나무가 한꺼번에 쓰러지면 갑자기 엄청난 양의 목재가 생긴다. 쓸모가 많은 굵고 긴 몸통 부분은 제외해도 가지 쪽에서 땔감거리가 많이 나온다. 부지런히 패어 헛간에 쌓아 놓으면 두고두고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다. © 김미수


왜 창가에 히터가 있을까

독일 건물은 대부분 벽면에 있는 히터로 난방을 한다. 철제 라디에이터를 데워 방 안 공기를 서서히 덥히거나 히터에서 직접 따뜻한 공기를 내뿜는 방식이다. 간접 난방을 하면 공기가 자연스럽게 데워지지만 연료 소모량이 많고 난방 효과가 제한적이란 단점이 있다. 직접 난방은 간접 난방보다는 온도가 빠르게 높아지지만 실내 공기가 쉽게 건조해지고 난방 효과 역시 지속적이지 않다.


히터는 보통 창문 바로 아래 설치되어 있는데, 창가의 웃풍 때문에 실내 난방 효율이 떨어지는 건 아닐까 의문이 든다. 어릴 적 살던 고향 집은 방문을 열고 나가 마루에 서면 바로 바깥인 열린 구조의 한옥이라, 방문 근처는 항상 웃풍이 심하고 바닥도 제일 찬 난방의 사각지대였다. 그러나 아랫목에 이불을 덮고 앉아 있으면 금세 뜨끈해지던 온돌 난방은 방안 골고루 온기를 잘 전달했다. 그와 달리 독일의 히터는 공기를 데우는 방식이라 외풍은 차치하고 방 안 구석구석까지 온기를 효율적으로 전달하지 못한다.


2016년 독일 연방환경청의 ‘독일 가정의 에너지 소비’ 기사[각주:1]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독일 가정에서는 연간 총 에너지 소비량의 66.8%를 난방에 썼다고 한다. 4월이 지나도 날씨가 추워 난방을 하는 기간이 비교적 길기 때문일까. 난방 연료로는 천연가스와 석유를 많이 사용하고, 대체 에너지와 지역난방이 그 뒤를 잇는다. 동독 지역에는 아직도 석탄으로 난방을 하는 집들이 있어서, 대형 마트에서 석탄 판매를 시작하는 걸 보거나 산책하다 석탄을 태울 때 나는 특유의 냄새를 맡으면 난방의 계절이 돌아온 걸 실감한다.


우리가 사는 주택은 가스난로로 건물 전체를 난방한다. 우리 집 히터는 뜨거운 공기를 직접 분사하는 방식인데, 깔끔하고 현대적으로 보이나 에너지 효율이 그리 좋지 않아 집안 전체가 훈훈할 정도로 히터를 가동하면 난방비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나올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상당히 소극적으로 난방을 한다. 바깥 기온이 영하에 가깝게 떨어지는 11월 중하순쯤에야 비로소 그해 첫 난방을 시작하는데, 양말은 물론 위 아래로 옷을 서너 겹씩 껴입고 외투까지 입고 나서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돼서야 히터를 튼다. 그러다 보니 아끼는 것도 좋지만 때론 삶이 고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땐 비용은 적게 들면서도 생태적으로 마음껏 난방하던 예전이 그립기만 하다.


▲ 창문 밑에 있는 우리 집 히터. 두꺼운 커튼을 달아 웃풍을 차단해야 열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 김미수


밥도 하고 난방도 하고, 1석 5조 오븐
독일에 와 처음 살았던 셋집은 다가구주택 2층에 있는 부엌이 딸린 투룸으로, 방마다 ‘카헬오펜’이라 불리는 몸체가 타일로 된 난방용 오븐이 있었다. 카헬오펜은 연료 효율이 좋아서 온종일 난방을 해도 나무 소비량이 그리 많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까시나무나 너도밤나무처럼 단단한 나무 두세 덩이를 넣고 자면 다음 날 아침까지도 불씨가 사그라들지 않을 정도였다. 부엌에도 나무를 연료로 취사하고 난방까지 할 수 있는 철제 오븐이 있었는데, 이 오븐은 에너지 효율이 아주 좋지는 않지만 요리하려고 불을 때면 동시에 난방도 된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또 열판이 넓어 한 번에 냄비를 대여섯 개 이상 올릴 수 있어서, 조리용 냄비와 함께 큰 솥에 물을 끓여 뒀다가 설거지나 샤워하는 데 썼다. 습하고 흐린 겨울 날씨 때문에 잘 마르지 않는 빨래도 오븐 위에 줄을 걸어 말렸고, 오븐에 끓인 물로 보온 물주머니를 만들거나 돌을 직접 데워 휴대용 온돌로 사용하는 등 오븐 하나를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하게 썼다.


우리 집에 있던 카헬오펜은 난방만 되는 단순한 형태였지만, 열효율을 높이기 위해 뜨거운 배기가스가 굴뚝으로 바로 나가지 않고 방 안을 한 번 더 돌고 나가도록 배기구를 연장한 뒤 그 위에는 벤치를 얹어 좌식 온돌 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다. 또 오븐에 물탱크를 연결해서 난방할 때 물을 함께 데워 욕실과 부엌에서 사용할 온수를 만들고, 조리용 오븐과 연결해서 양방향 난방을 하는 등 활용 범위를 넓힌 좀 더 전문적인 카헬오펜도 많다.


▲ 조리용 오븐(사진 속 오른쪽)과 연결된 카헬오펜(사진 속 왼쪽). 오븐 속에 설치된 탱크의 물을 데워 집 안 온수를 해결하고, 위에는 건조대를 설치해 빨래까지 말린다. © 김미수


구할 수만 있다면 나무가 최고의 연료

독일인 모두가 나무로만 난방을 한다면 문제겠지만, 근처에 숲이 있거나 일정 면적 이상의 대지에 나무가 여러 그루 있는 집이라면 잘 자라는 나무를 과도하게 베지 않고도 생태적으로 난방을 할 수 있다.


전에 살던 에베르스발데는 숲이 많은 도시라 숲 관리인이 정기적으로 솎아 내는 나무 양이 꽤 많았다. 다듬지 않은 통나무째로 사면 값이 꽤 싸서, 100유로(약 12만 4천 원)도 안 되는 돈이면 친구들과 저마다 쓸 만큼 나눠 가져도 충분히 많은 나무를 살 수 있었다. 통나무를 한번 사서 잘게 팬 뒤 헛간에 쌓아 놓으면 2년 넘게 난방비 걱정 없이 따뜻하게 겨울을 났다. 어느 해에는 집 근처 공원 관리인들이 나무를 베어 내는 것을 보고 혹시 베어 낸 나무를 싸게 살 수 있는지 문의했다. 운 좋게도 어차피 숲에다 버릴 나무라며 공짜로 집 앞까지 배달해 주기까지 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공원에서 공짜로 얻은 나무는 조직이 연하고 물기가 많아 연료로서 가치가 떨어지긴 했지만, 잘 말려 쓰니 오븐에 자주 넣어야 하는 번거로움만 있을 뿐 난방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렇게 주변에서 구할 수만 있다면 나무만큼 생태적인 난방 연료는 없다. 잘 말려서 연소시키면 별다른 유해가스가 나오지 않고, 가지치기하고 남은 나뭇가지 등 생분해성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연료로 쓰니 자원을 재활용할 수 있으며, 원거리 운송할 필요도 없어 생산 및 유통에 에너지가 거의 들지 않는다. 또 나무가 깨끗하게 연소하고 남은 재는 해충 방제용 친환경제제나 미네랄 비료로 사용할 수 있으니 마지막까지 버릴 구석이 하나 없어 ‘가장 생태적인 연료’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이미 이렇게 환상적인 나무 연료 오븐을 경험하고도 어디서 끌어온 건지도 모를 외부 에너지로 난방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어쩌면 셋집 사는 사람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난방같이 구조적인 부분까지 완전히 생태적인 삶을 실현하기 위해 다음에 이사 갈 집은 꼭 내 집이기를. 그 집에 열효율이 좋고 활용 범위가 넓은 카헬오펜이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재 대신 숯 알갱이를 남겨 화장실과 퇴비 만드는 데 쓸 수 있는 생태적인 오븐이 있어서 뒷마당에서 나오는 나무로 원 없이 따뜻하게 난방할 수 있기를. 그런 날이 어서 오기를 소망해 본다.


▲ 오븐 한구석에 강가에서 주워 온 돌들을 데워서 면주머니에 넣으면 휴대용 손난로가 된다. 오래 쓰다 보니 돌의 겉면이 까맣고 반질반질해졌다. © 김미수

 


↘ 김미수 님은 2005년 독일로 건너가 ‘조금씩 더 생태적으로 살아가기’에 중심을 두고 냉장고 없는 저에너지 부엌을 시작으로 실내 퇴비 화장실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또 먹을거리를 직접 가꾸는 등 좀 더 지속 가능하고, 좀 덜 의존적인 생태 순환의 삶을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my-ecolife.net에 이런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에서 만드는 월간지 <살림이야기> 56호 2017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2016년 첫호부터 '[독일댁의 생태적인 삶]'이란 꼭지에 독일에서 겪는 생태적인 삶과 독일내 생태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살림이야기 측에서 동의해 주신 덕분에 다음호가 발간되면서 이 글을 My-ecoLife에도 전문 공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살림이야기 홈페이지에 가시면 과월호의 다른 모든 내용도 보실 수 있습니다.

Link: [살림이야기]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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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Umweltbundesamt(UBA), "Energieverbrauch privater Haushalte, Umwelt Bundesamt"(2016.8.2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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