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호텔’에 ‘공짜 일꾼’ 모십니다

2016. 5. 30. 07:00My-ecoGarden

[독일댁의 생태적인 삶]

- 도마뱀, 집달팽이, 야생벌이 짓는 텃밭 농사 (글 전문 보기)




비 온 뒤 길을 걸을 때 남편이 날 먼저 보내고 한참 뒤에 오는 경우가 있다. 알고 보니 길에 널브러진 지렁이가 사람들 발길에 밟혀 죽지 않도록 풀숲에 놓아주느라 그런다. 여름철 비 온 뒤에는 우리 집 텃밭 사이사이 좁은 길에도 온갖 생물이 꼬물꼬물 기어 나온다. 그때마다 더 조심히 살피며 걷지만, 내 발에 채이고 밟히는 생물이 적지 않다. 이렇게 우리 집 텃밭의 소중한 일꾼들을 잃을 수는 없는데.


김미 _ 사진 다니엘 피셔


자연멀칭으로 짓는 평화의 농사

독일 환경보호의 상징인 ‘자연보호 올빼미’를 고안한 쿠르트 크레치만은 생전에 완전한 ‘자연멀칭’(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땅을 짚 등 자연 재료로 덮는 일. 농작물의 뿌리를 보호하고 땅의 온도를 유지하며, 흙의 건조·병충해·잡초 따위를 막을 수 있다)을 통한 ‘평화의 농사’를 지었다. 쿠르트 할아버지는 ‘동물 분비물·비료·퇴비가 없고, 독소가 없고, 땅을 뒤집지 않고, 기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① 땅속 미생물의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② 모든 작물을 최소한의 물로 기르고, ③ 최소한의 잡초가 자라도록 하고, ④ 아주 적은 노동력과 최소한의 도구만으로 기계 사용 없는 조용한 밭 환경을 만들고, ⑤ 건강하고 맛있는 양질의 먹을거리를 수확[각주:1]하고자 텃밭 사잇길에까지 자연멀칭을 해 텃밭을 가꾸고 책도 펴냈다.


그래서인지 쿠르트 할아버지네 텃밭에서는 해마다 같은 자리에 10년 넘게 감자를 키워도 이어짓기 피해 없이 주먹만 한 감자를 캐낼 정도였단다. 심지어 이웃한 옆집 텃밭은 해충 피해를 크게 입은 해에도 할아버지네 텃밭 대부분은 문제가 없었다니 놀랍기만 하다. 자연멀칭 덕분에 텃밭 내 자체적인 생태 시스템이 안정되어 땅속 미생물은 물론이고 여러 익충과 해충을 먹이로 하는 천적 등 다양한 ‘텃밭 일꾼’들이 활발하게 활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 독일의 환경 생태 선구자 쿠르트 할아버지는 텃밭 사잇길까지 완전히 자연멀칭해 비료, 독소, 기계 없는 ‘평화 의 농사’를 지었다. ⓒ 다니엘 피셔(Daniel Fischer)


해충 없애고 열매 맺게 하는 공짜 일꾼들

우리 집 텃밭 농사는 작물 하나하나에 거름을 듬뿍 줘서 단기적으로 수확량을 높이기보다 땅속 미생물을 잘 돌봐서 땅이 살아 있게 하고 땅심을 높여 장기적으로 텃밭 생태계를 최적화하는 게 목표다. 해충으로 인한 피해에도 유기 제제를 직접 살포하기보다 토양 미생물이 굶주리지 않고 겨울에도 땅이 헐벗지 않게 겨울작물·여러해살이작물·녹비작물을 재배하고, 자연멀칭 등 기본적이지만 중요한 방법을 꾸준히 실천해 다양한 텃밭 생물의 활발한 활동으로 문제가 절로 해결되는 방법을 지향한다.


독일에선 도마뱀, 고슴도치, 다양한 야생벌과 나비 등을 텃밭 생태계의 다양성을 보여 주는 지표로 여긴다. 대부분은 텃밭 농사에 힘을 보태는 ‘공짜 일꾼’으로, 해충을 방제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등 많은 일들을 해낸다. 진딧물을 막는 익충으로 유명한 칠성무당벌레, 토마토·오이 등에 열매가 달리도록 꽃 가루받이를 해 주는 각종 야생벌과 나비, 모기와 날파리 등 날벌레를 먹는 독일도마뱀, 거대민달팽이 알과 성체를 먹는 집달팽이와 고슴도치, 먹이를 찾겠다고 밭을 뒤집는 통에 내 속도 함께 뒤집어 놓지만 어쨌든 해충도 먹는 새들, 초봄 모종에 쓸 흙이 부족할 때 어찌 알고 흙더미를 올려 주는 땅두더지 등이다.


이들을 위해 솔방울, 억새 따위로 양지바른 곳에 ‘곤충호텔’을 지어 놓고, 작은 연못을 만들어 곤충부터 새 들까지 모두 목을 축이게 한다. 또 텃밭에 꽃이 계속 피어 있도록 야생초와 작물 개화기를 잘 계획해 벌과 나비에게 먹이와 서식지를 제공하고, 햇볕이 내리쬐는 건조한 돌무덤 사이에 몸을 숨기기 좋아하는 독일도마뱀을 위해 텃밭 한구석에 돌무덤을 쌓아 놓는다.


▲ 독일도마뱀은 모기와 날파리 등 날벌레를 먹는다. ⓒ 다니엘 피셔(Daniel Fischer)


▲ 야생벌은 작물이 열매를 맺도록 꽃가루받이를 해 준다. 이들은 생태계의 다양성을 지킬 뿐만 아니라 텃밭을 일구는 ‘공짜 일꾼’이다. ⓒ 다니엘 피셔(Daniel Fischer)


생태계가 안정되면 벌레도 살고 나도 산다

독일 텃밭 농사의 가장 큰 적을 물으면 아마 다들 거대 민달팽이를 들 것이다. 굵기가 성인 엄지 정도지만 개중에서도 큰 것은 늘어진 길이가 한 뼘 이상 될 정도로, 텃밭 작물 대부분을 먹어 치운다. 거대 민달팽이 대처법은 각양각색이지만, 대부분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멀쩡히 살아 있는 걸 밟아 죽이고, 잡은 뒤 접시에 모아 놓고 소금을 왕창 뿌리거나 유리병에 넣고 끓는 물을 부어 그 액을 텃밭에 뿌리기도 한다. 중세 시대 어딘가에서 행해졌을지도 모를 고문법을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지금에야 나도 별일 아닌 양 웃으며 얘기하지만, 너무 따뜻한 겨울 탓에 텃밭이 아예 거대 민달팽이 사육소가 되어버린 몇 년 전에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봄에 모종의 여린 잎은 물론이고 한여름에 이미 크게 자란 토마토와 울타리콩 줄기까지 먹어 치웠을 때는 평화의 농사를 짓겠다는 마음 대신 몸속 깊은 곳에서 살의가 끓어올랐다. 그런 내 분노를 조금이나마 잠재운 건 “그들도 먹고살아야지 않겠느냐”는 남편의 한마디. ‘그래, 너희도 우리도 다 잘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래도 내 입장에선 용서가 안 되니 참 미안하구나.’ 이렇게 겨우 마음을 눌러 가며 거대 민달팽이의 천적들이 서식해 텃밭 생태계가 조화를 이룰 때까지 나름대로 고군분투해 왔다.


거대 민달팽이에 가장 취약한 작물은 막 옮겨 심은 모종들로, 우리 집에서는 모종을 심은 뒤에 주위에 민달팽이가 싫어하는 재를 살짝 뿌려 침입을 막는다. 그래도 안 될 때는 손으로 일일이 잡아 밭에서 한참 벗어난 정원 끝으로 옮겨 놓는다. 심할 때는 아침저녁으로 잡는데도 매번 10L짜리 용기 절반 이상이 찰 정도로 거대 민달팽이가 들끓기도 했다.


지인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은 “자연멀칭을 하면 그 아래로 거대 민달팽이가 몸을 숨기고 알을 낳기 때문에 좋지 않다”는 건데, 이론상으로는 틀리지 않지만 쿠르트 할아버지네 텃밭과 내 현장 경험에 따르면 그다지 맞지 않다. 온갖 방법으로 달팽이를 잡아 죽이고 텃밭에 멀칭을 하지 않은 결과, 거대민달팽이가 줄어들어 이제 더는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인들은 “그나마 잡아 죽여서 현상 유지라도 하는 것”이라고 우기지만, 달팽이를 죽이지도 않고 끊임없이 자연멀칭을 하고 있는 우리 텃밭에 민달팽이 피해가 급격히 늘어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올봄 우리 집 텃밭에 거대 민달팽이가 눈에 띄게 줄어든 걸 발견했다. 이때쯤이면 이미 엄지 반 마디만 한 아기 달팽이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게 보통이고, 지난겨울이 상당히 온화했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해보다 더 들끓어야 정상인데, 올해 들어 내 눈으로 본 거대 민달팽이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아주 적었다. 정말 개체 수가 줄었는지, 또 그것이 텃밭 생태계 안정에 따른 지속성 있는 결과인지를 판단하기에는 시기상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태순환농사로 토양을 살아 있게 하고 텃밭 생태계를 안정시키는 게 거대 민달팽이는 물론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문제의 해결책이며, 우리 텃밭이 계속해서 나아갈 길이라는 믿음엔 변함이 없다.


▲ 우리 집 텃밭 농사의 최대 적인 거대 민달팽이. 한여름 무성히 자란 토마토와 울타리콩 줄기까지 먹어 치울 정도로 먹성이 대단하다. ⓒ 김미수



↘ 김미수 님은 생태적인 삶을 향한 한 걸음으로 2001년 가을부터 완전 채식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2005년 독일로 건너가 ‘조금씩 더 생태적으로 살아가기’에 중심을 두고 남편과 함께 지속가능한 농사를 지으며 생태적 순환의 삶을 사는 방법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www.my-ecolife.net에 이런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에서 만드는 월간지 <살림이야기> 48호 2016년 5월호 44~46쪽에 실린 글입니다. 2016년 첫호부터 '[독일댁의 생태적인 삶]'이란 꼭지에 독일에서 겪는 생태적인 삶과 독일내 생태˙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살림이야기 측에서 동의해 주신 덕분에 다음호가 발간되면서 이 글을 My-ecoLife에도 전문 공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살림이야기 홈페이지에 가시면 과월호의 다른 모든 내용도 보실수 있습니다.

Link: [살림이야기]


 참고 자료 


  1. Kurt Kretschmann & Rudolf Behm, 『Mulch total- der Garten der Zukunft』, OLV(2001), p14~18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