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25. 19:45ㆍMy-ecoGarden
2005년 독일인 남편과 결혼해 독일에서 산 이래로, 나는 남들처럼 휴가지로 떠나 온전히 즐기는 시간만을 보낸 적은 거의 없다. 대신 휴가와 휴식, 일과 취미생활 사이를 넘나드는 우리 부부만의 소박한 휴가를 보내오고 있다.
독일 여름휴가는 2~3주 정도
팍팍한 직장생활의 여파로 법정휴가마저도 눈치가 보여 다 챙겨 쓰기 쉽지 않다는 한국의 직장인들과 달리, 독일에서는 보통최소 24일
이상의 법정휴가를 비교적 문제없이 다 쓸 수 있다. 그래서 여름휴가도 2~3주 정도로 길게 보내는 경우가 많다.
독일인들도 해변에서 보내는 여름휴가에 대한 로망이 있다. 단, 한국에서는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바다로 가는 것과 달리, 해변에
누워 작열하는 태양을 만끽하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 같다. 아마도 변덕이 심한 독일 날씨가 이유일 거라 짐작하는데,
한여름에 기온이 뚝 떨어지기도 하는 등 무더위가 지속되지 않기 때문 아닐까 싶다.
저가항공권의 범람으로 한국에서는 국내여행과 비슷한 가격에 동남아 등 해외로 여름휴가를 떠날 수 있다는데, 독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 기차보다 싼 비행기를 타고 주변 국가로 휴가를 떠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대륙 간 비행기 여행의 역사가 40년
정도밖에 안 되었다는데, 어느새 비행기 여행은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하지만 비행기는 짧은 시간 안에 다른 교통수단의 몇 백
배를 단숨에 뛰어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여 지구 환경에 끼치는 악영향이 적지 않다.
결혼해 처음 살았던 작은 도시 에베르스발데는 시댁이 있던 베젤과 600km 이상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평소에 자주 방문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여름이면 시댁으로 휴가를 떠나 몇 주씩 머물다 오곤했다. 저렴한 주말 단체 표를 끊어 지역열차만 10번
이상 갈아타고, 고속 열차보다 2배 가까이 시간을 들여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른 새벽 첫 기차에 올라 언제 도착하나
싶어 한숨을 내쉬다가도, 창밖으로 지나치는 같은 듯 다른 풍경에 빠져 어느새 지루함을 잊곤 했다. 그러다가 몇 시간은 들고 온
책을 읽기도 하고,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그간 못 나눈 속 깊은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하며 느린 여행이 주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독일에는 여전히 기차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고, 자동차로 이동하는 경우에도 자전거를 함께 가져가 여행지 내에서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다. 내륙지방으로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 중에는 독일어로는 ‘반더른(Wandern)’이라 부르는, 그
지역의 산과 들을 몇 시간씩 걸어다니며 둘러보는 일종의 자연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일상적으로 많이 퍼져있는 독일의
휴가문화에는 생태적인 모습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 텃밭에서 멀칭 작업. 잎이 돋고 꽃이 피어 나날이 바뀌는 텃밭이 우리 부부에게는 최고의 휴가지이다. ⓒ 김미수
우리 부부에게 최고의 휴가지는 텃밭
남편이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빠듯한 일정으로 인해 여름에 몇 주간 집을 비우는 게 어려워졌다. 다행히 지금 사는
집이 건물과 부지를 합쳐 1ha에 가까운 면적이고,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공원에 온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나무가 많아 늘 소풍
온 기분이 든다. 그래서 휴가철에 굳이 다른 곳으로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휴가 때는 주로 집에서 그동안 미뤄뒀던 갖가지 일이자 취미로 퇴비 화장실이나 빗물 저장·이용 시스템을 손보는 일을 한다. 이른
오후까지 좋아하고 보람도 있는 일을 하다가, 늦은 오후에는 근처 호수로 수영하러 가서 노동으로 타올랐던 열기를 식히고 돌아온다.
때때로 자전거를 타고 집 주변 자연탐방에 나서기도 하는데, 매번 새로운 과일나무를 발견해 그해 가을 과일수확 예정지가 늘어나는 등
의도치 않은 소득도 얻곤 한다.
▲우리는 빗물을 모아 텃밭에 물을 주는데, 남편은 올 여름휴가를 이용해 빗물저장 물탱크를 좀 더 설치하려고 한다.ⓒ 김미수
올 여름 휴가 때도 꼼짝없이 집에 묶여 있어야 할 것 같다. 사실은 텃밭을 두고 장기간 집을 떠나는 결정이 우리 부부에게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올해는 다소 이르게 찾아온 불볕더위가 텃밭을 바짝 마르게 할지도 몰라, 이 모든 염려를 뒤로하고 휴가를
떠난다 해도 마음이 그다지 편치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 휴가에는 태양광 발전판 설치, 빗물 저장탱크 확장, 그리고 텃밭 경계 보수 등을 할 계획이다. 올해 초, 지역의
대체에너지 회사에서 우박 때문에 표면이 손상된 태양광 발전판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여러 장 사뒀다. 일단 헛간 한구석에 잘 세워
보관해 두었는데, 휴가기간 동안 관련 정보를 좀 더 찾아 발전판을 통해 모은 전기를 어떻게 저장하고 사용할지 결정해서 설치하려고
한다.
우리는 생태적으로 농사짓고자 되도록이면 수돗물이나 지하수를 끌어다 쓰지 않고 빗물과 집안의 하수를 모아 텃밭에 준다. 특히 우리가
사는 할레는 건조한 지역인데다 우리 텃밭에는 토마토, 호박 같은 일년생 작물이 많아 물을 충분히 대야 하기 때문에, 많은 양의
빗물을 저장하는 일은 꽤 중요하다. 그래서 올봄 1㎥ 크기 물탱크 4개를 새로 구해, 급한 대로 그중 일부를 텃밭 근처에
설치했다. 이번 휴가 때 나머지 물탱크도 마땅한 공간을 찾아 설치를 마칠 계획이다.
▲텃밭 자체만으로도 좋지만, 텃밭에서 일하는 사이사이 드러누워 갖는 잠깐의 휴식이 정말 달콤하다. ⓒ 김미수
이웃이 버린 못 쓰는 널빤지로 텃밭 사잇길의 경계를 만들었는데, 오래된 나무를 사용하다보니 몇 년 지나지 않아 헐고 무너져 못쓰게 된 곳이 생겨나 보수해야 한다. 이렇게 당장 급하지 않은 일을 나중으로 미루다 보면 할 일이 쌓이곤 한다. 다행히 나무나 돌을 이용해 구조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꽤 재미있다. 올봄 부활절 휴가에는 작은 돌담을 쌓아 허브정원(Herb spiral)을 만들었는데,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가 즐거운 놀이 같았다.
생각해보니 우리 부부에게는 텃밭이 최고의 휴가지인 듯하다. 잎이 돋고 꽃이 피어 나날이 바뀌는 모습에서 삶의 다양성을 느끼고,
맺힌 과실을 보며 충만함을 경험한다. 텃밭 자체만으로도 좋지만, 텃밭에서 일하는 사이사이 드러누워 햇볕을 쬐고 하늘을 보며 갖는
잠깐의 휴식이 정말 달콤하다.
남편이 공부를 마치고 난 후, 태양광 발전판을 통한 자가발전이 성공하고 빗물 저장 탱크를 이용한 자동 관수시스템이 완성되어 텃밭을
두고 길을 나서도 아무 걱정이 없을 때, ‘진짜 휴가’를 떠나고 싶다. 유기농사를 오랫동안 지어왔다는 풀다 수도원부터 마리엔베그
유기농장, 슈타이너 가든등 세계 곳곳에 있는 생태공동체를 방문해 며칠간 머무르며 일도 돕고 여러 가지를 알아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에서 만드는 월간지 <살림이야기> 26호 2014년 7월호의 '[특집] 특집-여름휴가'편에 실린 글입니다. 살림이야기 측에서 동의해 주신 덕분에 2014년 8월호가 발간되면서 이 글을 My-ecoLife에도 전문 공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살림이야기 홈페이지에 가시면 과월호의 다른 모든 내용도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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