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23. 07:59ㆍMy-ecoGarden
[독일댁의 생태적인 삶]
-땅이 살아
있으면 작물은 저절로 잘 자란다 (글 전문 보기)
▲ 압축토양과 살아있는 토양 ⓒ 다니엘 피셔 (Daniel Fischer)
1950년대에 이미 의회에서 농업정책과 목표를 정해 실천해 오고있는 나라. 2022년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겠다고 선언한 나라. 바로 독일이다. 이렇게 일찍부터 환경과 생태에 관심이 높다고 알려진 독일을 통해 우리 삶을 돌아보고 어떻게 살지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번 호부터 독일에 사는 여성 생태주의자에게 농업, 탈핵, 먹을거리 등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 본다. 첫 번째 주제는 지속가능한 유기농을 위한 독일 내 움직임이다.
글 _ 사진 김미수
생태적이지 않은 유기농산물이 싼값에 수입돼
독일 유기농의 역사는 유기농민연합회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들이 중심이 되어 왔다. 1928년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을 근간으로 하는 데메터 농민회(Demeter)가 창립된 이래 1970년대 이후 비오란트(Bioland), 나투어란트(Naturland) 등 다른 농민회도 여럿 생겨났다. 1 이들은 유럽연합(EU) 유기농기준 이상의 자체 기준을 적용해 회원 농가를 엄격하게 관리해 오고 있다. 그래서 독일 소비자들은 이런 농민회 로고가 붙은 농산품을 상당히 신뢰하고 있다.
유럽 유기농연구소(FiBL)와 세계유기농운동연맹(IFOAM)의 2015년 공동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은 유럽 유기농시장의
최대 소비국가로, 2013년 EU 유기농 소매 판매량의
31%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형마트 등에 납품하는 단일경작 대형 유기농부들도
생겨났다. 그런데도 독일 전체 경작지 중 유기농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3년 기준 고작 6.4%이다. 2 그래서인지
독일 시장의 유기농산물은 품목에 따라 2%에서 최고 95%까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2009~2010년 기준으로 독일 식단의 기본 채소인 감자는 28%, 당근은 48% 수입하고 있고 토마토는 80%, 파프리카는
90%까지 수입하고 있다. 3
주
수입처 중 하나는
20년 전만 해도 허허벌판이던 스페인 남부 알메리아 지역. 이곳은 현재 유럽의 과일과
채소 생산 중심지가 되었지만, 그 덕에 온 지역이 비닐하우스로 가득 차 '플라스틱의 바다(mar del plástico) 4'라는 오명을 입었다. 유기농 붐을 타고 알메리아에도 유기농 산업단지가 들어선지 오래지만,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무늬만 유기농인 작물을 생산해 내고 있다. 거대 온실에서 생산량을
최대한 내는 데에만 초점을 맞춰서, 공정한 임금 지불도 가능한 한 피해 가면서 말이다. 5
독일의 대형마트와 슈퍼마켓 등에 값싼 유기농산물을 조달하기 위해 투자자들은 땅값이 싼 루마니아 등지의 농부들과 재배계약을 맺기도 한다. 자급자족을 하고 남은 작물을 산지 직거래로 판매하던 소규모 지역농들은 유기농전환지원금과 투자자들의 말에 혹해 돈이 되는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비유기농 사료를 쓰는 등 반쪽짜리 유기농 농축산물이 생산되기도 하지만, 제대로 된 꼼꼼한 점검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6 또 이집트나 이스라엘 같은 사막 지역에서 유기농 감자를 생산하려고 현지의 지하수를 고갈시키고, 다량의 수돗물까지 사용한다. 대부분 빗물로 관수하는 독일 감자에 비해 사막 감자는 수돗물을 30배쯤은 더 먹고 자란다. 이렇게 생태적이지 않은 유기농산물은 싼값에 독일로 수입되어 독일 농부를 압박한다. 7
▲ 2008년 우주에서 촬영한 스페인 알메리아 지역의 모습. 사진에 희게 보이는 부분이 모두 온실로, 해안선에서부터 산 밑까지 넓게 펼쳐져 있다. ⓒ 미국항공우주국 www.nasa.gov
"작물을 어떻게 잘 자라게 하느냐가 아닌, 토양을 얼마나 건강하게 살아있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토양 구조가 부슬부슬하고 느슨하여 통기성이 좋으면서 습기도 잘 머금을 수 있을 정도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하게 살아 있는 토양 속에는 지렁이와 미생물 등 토양 생물들이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러면 자동으로 그곳에 뿌리내린 작물도 병충해 없이 스스로 튼튼하게 자랄 수 있다."
작물을 잘 자라게 하기보다 토양을 살아 있게 하는 게 중요
서양의 현대 유기농 선구자 중 하나인 루돌프 슈타이너가 활동했고 오랜 유기농 역사를 가진 독일이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싶다. 땅 살리고 몸 살리자는 유기농 본연의 정신을 잊고 오로지 경제성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 아닐까?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뀌며 유기농 시장 규모가 커진 것 자체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유기농의 주된 방향이 세계화·산업화에 맞춰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생산과 소비가 같은 지역 내에서 이뤄지는 탈중앙농사, ‘지역농’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환기할 필요가 있다.
몇 년 전부터 독일에서는 젊은 유기농부들 사이에서 지역사회지원농업(CSA)이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물론 이전에도 농민회 회원 농가를 중심으로 이러한 농업형태가 있어 왔지만, 8 젊은 층을 중심으로 최근 들어 다시 활성화되고, 이를 실현하려는 움직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농산물을 먹고 남은 유기물쓰레기를 농지로 되돌리거나
농가를 방문해 직접 소통하고, 소비자가 직접 참여해 농사일을 거들고 배우기도 한다. 이렇게 생산자와 소비자가 영농 책임 공동체로 묶여 농가는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받고, 소비자도
믿을 수 있는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제공받는다. 9
제초를 위해 비닐멀칭을 하고, 온갖 외부
자재를 이용해 유기농 비료를 만들어 뿌리며, 그래도 문제가 생기면 유기농 살충제를 만들어 뿌리는 방법과 생각으로는
진정한 유기농의 미래가 없다. 작물을 어떻게 잘 자라게 하느냐가 아닌, 토양을 얼마나 건강하게 살아 있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토양 구조가 부슬부슬하고 느슨하여 통기성이
좋으면서 습기도 잘 머금을 수 있을 정도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하게 살아 있는 토양 속에는 지렁이와
미생물 등 토양생물들이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러면 자동으로 그곳에 뿌리내린 작물도 병충해 없이 스스로 튼튼하게
자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경운을 최소한으로 하고 거대 농기계를 사용해 토양을 압착하지 않아야 한다. 또 사계절 내내 낙엽, 풀, 수확 후 생긴 농작물찌꺼기로
땅을 덮거나 녹비작물을 자라게 해 토양이 헐벗지 않게 하는 동시에 토양생물들의 먹이가 끊이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방법은 결코 텃밭농사 단위의 취미농들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독일에서는 최소경운과 자연멀칭으로
성공적으로 농사짓는 직업농부와 전문농가가 생겨난 지 오래다. 퇴비도 순환의 법칙 아래 밭에서 수확하고 남은
찌꺼기나 수확물을 먹고 나온 분뇨, 주변 야생초 등을 재활용해 만드는 것이 좋다. 이런 방법을 잘 사용하면 굳이 농사에 가축이 필요하지 않다. 독일에서는 최근 들어 가축의 도움
없는 지속가능한 유기농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 외에 독일 등에서 논의되고 있는 몇 가지 대안 농업 방법을 소개한다.
▲ 토양생물들이 유기물을 먹고 만든 검은 부엽토층. 이 한 주먹의 건강한 흙 속에는 지구상의 인구수보다 훨씬 많은 토양생물이 살고 있다. 이런 흙에는 화학비료도, 제초제도 필요 없다. ⓒ 김미수
지속가능한 대안 농업
퍼머컬처(Permaculture): 호주인 빌 몰리슨이 창안한 생태적이고 대안적인 땅 이용의 한 형태, 나아가 이러한 삶의 방식을 말한다. ‘영구적인 농업(Permanent Agriculture)’의 줄임말에서 ‘영구적인 문화(Permanent Culture)’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땅과 인간을 생각하고, 성장과 소비에 한계를 두고 공정하게 나눠 공유한다’라는 윤리적인 원칙과 ‘자연 생태계의 발달과 스스로 유지해 나가는 과정을 관찰한다’는 기본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다년생 작물과 자가파종을 하는 작물 위주로 배치해 인간의 노력을 최소로 하고 농경지 스스로 생장·발전하는 시스템을 지향한다. 10
산림농업(Agroforestry): ‘산림을 혼합해 조성한 농경시스템’이라는 뜻이다. 쉽게 볼 수 있는 사례로 과수원 아래의 풀을 가축이 뜯어 먹게 한다든가 논밭 사이에 인간이 이용 가능한 나무(주로 식용이나 약용. 목재용도 가능)를 심어 수확의 폭을 넓히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산림농업은 토양 유실 방지, 병충해 예방, 방풍, 생물다양성을 위한 환경 제공 등 생태적으로도 유익한 점이 많다. 또 조경을 해 놓은 듯 보기에도 아름답고, 농작물 외에 다른 수확을 얻을 수 있어 경제성도 높다. 11
숲텃밭(Forest Gardening): 산림농업의 한 종류로, 전 세계 곳곳에서 자급자족을 위한 가족농 형태로 이미 존재해 왔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영국의 로버트 하트로, 인도 케랄라 지역의 텃밭을 모델로 해 건강하고 치유효과가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했다. 작은 규모의 산림농업과 퍼머컬처의 이상적인 사례로, 숲의 경계 부분을 뚝 잘라서 밭으로 옮겨 왔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큰 나무에서 작은 나무, 풀로 식물의 키 높이가 점점 낮아지며 들판으로 이어지는 숲의 가장자리에는 크고 작은 나무와 수직으로 타고 오르거나 수평으로 땅을 덮으며 자라는 덩굴식물 등이 함께 자란다. 이렇게 여러 생물종이 공존하는 ‘자연적인 숲의 생태’를 농경에 적용해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생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숲텃밭이다. 12
테라프레타(Terra Preta): 포르투갈어로 ‘검은 흙’이란 뜻으로 몇 천 년 전 아마존 인디언들이 살았던 거주지에서 발견된 2m가 넘는 비옥한 검은 토양, 즉 부엽토층(Humus)을 말한다. 검은 토양의 비밀은 바로 숯 알갱이(Pflanzenkohle, Biochar)로, 그 안의 수많은 구멍은 토양 미생물의 서식지로 이용되는 한편 수분과 영양분을 저장하며, 쉽게 분해되지 않는 (장기) 부엽토층을 형성한다. 또 테라프레타는 토양 내에 탄소를 저장하여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테라프레타는 독일 내에서 죽어 가는 농경지를 살릴 수 있는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13
▲ 왼쪽부터 다양한 다년생 작물을 심어 영구적인 농경 시스템을 만드는 퍼머컬처의 모습. 비닐이 아닌 밀짚으로 멀칭한 땅에서 자라는 토마토와 호박. ⓒ 다니엘 피셔
↘ 김미수 님은 생태적인 삶을 향한 한 걸음으로 2001년 가을부터 완전 채식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2005년 독일로 건너가 ‘조금씩 더 생태적으로 살아가기’에 중심을 두고 남편과 함께 지속가능한 농사를 지으며 생태적 순환의 삶을 사는 방법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www.my-ecolife.net에 이런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에서 만드는 월간지 <살림이야기> 44호 2016년 1월호 44~46쪽에 실린 글입니다. 2016년 첫호부터 '[독일댁의 생태적인 삶]'이란 꼭지명 아래 독일에서 겪는 생태적인 삶과 독일내 생태˙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살림이야기 측에서 동의해 주신 덕분에 2016년 2월호가 발간되면서 이 글을 My-ecoLife에도 전문 공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살림이야기 홈페이지에 가시면 과월호의 다른 모든 내용도 보실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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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판 위키피디아, "Agroforestry", en.wikipedia.org(검색일 2015.12.1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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