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없이 살기' 시리즈 2-1]

2013. 12. 2. 08:17My-ecoKitchen

한겨울에 여름과일? 이렇게 하면 먹을 수 있다 : 냉장고 없이 사는 나의 실질적 저장 비법


 

냉장고 없이 살기란 주제로 처음 글을 쓸 때도 미루고 미루다가 마무리 지었던 게 2010 3월이었다. 그런데 이 글을 보고 작년부턴가 한국의 언론 매체 몇 곳에서 내게 연락을 해 왔다. 심지어 올여름엔 MBC 다큐멘터리 촬영팀이 우리 집을 방문 하기도 했다. '아니, 몇 년 전에 쓴 글 하나로 너무 우려먹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한국에서 생태적인 삶,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는 생활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진 이유 때문이겠거니 생각하기로 하자, 새삼 기사를 쓴 보람이 느껴졌다.

 

사실 독일이 지리적으로 한국보다 고위도에 위치해 보통 여름이 한국보다 서늘하고, 또 건조한 편이다. 그래서 독일에서 냉장고 없이 사는 게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냉장고 없이 사는 것이 독일에서도 결코 일반적인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한국처럼 대형 냉장고를 많이 쓰진 않지만, 독일에서도 일반 냉장고에 냉동고를 따로 갖추고 사는 가정이 적지 않다.) 기후 변화에 따른 이상기온으로 독일도 최근 몇 년간 한국의 한여름에 견줄만한 땡볕 더위가 간간이 찾아드는 날들도 있긴 했지만, 그런 날에도 우리 집 켈러(한국의 고방 비슷한 독일의 지하 혹은 반지하 저장공간)에 보관된 과일 주스 등의 음료수는 더운 날의 열기를 식혀 주기에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켈러가 시원하다고는 해도 전력을 사용하는 냉장고처럼 한여름에도 섭씨 0도에서 5도 씨 사이의 저온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내게는 나름대로 이런 켈러는 이용해 냉장고 없이 음식물을 상하지 않게 보관해 온 다년간의 비법들이 있다. 이런 노하우를 냉장고 없이 살아보기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한국에서도 실천해 볼 만한 것들을 중심으로 몇 가지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음식물 혹은 식료품을 저장하는데 냉장, 냉동, 건조, 염장( 혹은 알코올, 설탕 절임, 당장)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기호식품에 속하는 알코올이나 (알코올 저장) 한국의 대표적인 발효식품인 김치나 장아찌 같은 염장법, 비슷한 방법으로 과일 등에 설탕을 듬뿍 뿌려 저장성을 높이는 설탕 절임 같은 당장 등을 제외하고, 일반 요리에 필요한 채소를 오래 두고 먹는 방법 중 생태적인 방법을 꼽자면 건조와 병조림 정도가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집에서는 식재료 저장에 이 두 가지 방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 올 가을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 올 가을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 켈러(독일의 반지하 또는 지하 저장소)에 저장하기 위해 숯 알갱이를 담은 상자에 묻어 준비했다. ⓒ 김미수

 

거의 모든 식품을 저장할 수 있는 최고의 보관법 - 병조림

 

할레(Halle)로 이사 오며 텃밭을 갖게 된 후로, 우리 집에서 채소 저장에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은 병조림이다. 병조림의 대명사라 불릴만한 달콤한 과일 쨈이나 과일 조림 외에 버섯이며 각종 채소 종류를 병조림해두면 경제적인 면, 시간적인 면에서 많은 장점이 있다. 먼저, 각 채소를 제철에 저렴하게 사들여 병조림해 두면, 종류에 따라 몇 개월에서 1년이 넘게 두고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연간 식료품 구매 비용이 상당히 절감된다. 덤으로 제철이 아닌 채소들을 생태적인 양심에 거리낌 없이 (게다가 제철과 같은 비용으로!!) 원할 때마다 먹을 수 있다. 또 병조림을 이용하면 음식 준비가 한결 수월해지는 측면이 있다. 식사 준비할 때 병조림해 둔 채소를 한두 가지 활용하면, 끼니마다 필요한 재료를 일일이 손질할 필요도, 채소를 익히느라 오래 조리할 필요도 없이, 병뚜껑을 열고 팬에 음식물을 따뜻한 정도로 데우기만 하면 되므로, 요리시간이 상당히 단축된다. 특히나 무더운 여름날 병조림의 장점은 그 빛을 특히나 발하는데, 열을 발생하는 조리기구를 이용해 요리하는 것이 고역일 때가 많은 날에, 나는 켈러에서 몇 가지 채소 병조림을 갖고 와 후다닥 요리를 해내기도 한다.

 

혹시 신선한 채소가 아닌 병조림해 놓은 것을 섭취하는 것에 영양 면에서 별로 좋지 못한 것이 아닌가 염려하는 이들이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것을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한겨울에 외부와 차단된 비닐하우스에서 시베리아 한파가 몰아치는 바깥 기온에 반해, 엄청난 연료를 들여 난방한 따스한 온실 안에서, 인공조명 아래 자라나는 애호박, 풋고추, 상추 등의 겨울(?) 채소들이 얼마나 영양이 풍부하고 건강한 식품인가를.

 

우리 집 부엌의 보물들 - 각종 병조림

병조림은 뜨거운 내용물을 병에 채워 뚜껑을 닫으면, 병 내부에서 고온으로 팽창되었던 공기가 식으며 수축하는 원리를 이용해 밀봉시키는 방법이다. 여기에는 사과 무스처럼 1. 첨가물 없이 재료 100%만으로 병조림하거나, 2. 과일 쨈이나 과일 조림처럼 당을 첨가해 병조림하거나, 3. 채소와 버섯의 경우 소금을 넣고 병조림하는 방법, 4. 오이 피클처럼 식초를 이용해 병조림하는 방법, 이외에도 과즙이나 전통 음료, 또는 토마토소스나 패이스트 병조림하는 방법 등이 있다. 병조림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유리병을 소독해야 하는데, 주의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유리병 준비 및 주의점


▲ 유리병 준비▲ 유리병 준비 병조림을 시작하는 첫 단계로 맨 먼저 유리병을 소독해 준비해 둔다. ⓒ 김미수



 

병조림 만들기


1. 주재료 100%로 만드는 병조림 (병조림을 위한 과일 무스 만들기)




2. 당을 첨가한 병조림 (과일 쨈이나 과일 병조림)


 

▲ 들장미 열매 주스 병조림 준비 과정▲ 들장미 열매 주스 병조림 준비 과정 아가베 시럽을 병 밑바닥에 넣고 들장미 열매로 병을 꽉 채운 후, 뜨거운 물을 부어 뚜껑을 닫아 솥에 넣고 중탕한다. (사진 왼쪽 부터) ⓒ 김미수




3. 소금을 넣은 채소 병조림 (주로 채소와 버섯)

 

▲ 양송이 버섯 병조림▲ 양송이 버섯 병조림 자신의 요리 스타일과 가족의 섭취량을 고려해 병의 크기를 결정하고, 요리 종류에 따라 꼬치구이에 쓸 양송이는 4 등분을, 피자용 양송이는 편으로 두툼하게 썰어 병조림해 놓는다. ⓒ 김미수




4. 식초를 넣은 채소병조림 (각종 채소 식초 절임 혹은 피클)




5. 과즙이나 음료 병조림


건강을 위해 먹는 배즙이나 각종 과즙은 한국에서 주로 플라스틱 비닐 용기에 포장되어 판매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환경호르몬 문제 등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저장된 액즙이 과연 건강에 좋겠냐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우리 집에서는 해마다 각종 과일주스를 만들어 뜨거울 때 유리병에 넣어 밀봉해 다음 해 새로 주스를 만들 때까지 일 년 내내 두고 먹는다. 우리 집엔 끓는 물의 수증기를 이용해 과일즙을 만드는 냄비가 있어서 주로 이를 이용하지만 주서기 같은 것을 이용해 즙을 짠 다음 유리병에 넣고 중탕하는 방법도 있다. (70~80도 씨 이내에서 15분에서 30분 정도 중탕) 식혜나 수정과 같은 전통 음료도 방금 만들어 뜨거울 때 유리병에 부어 밀봉하면 시중에서 판매하는 음료수처럼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

 


6. 그 외 각종 소스나 패이스트


나는 토마토소스나 빵에 발라먹는 처트니와 패이스트 등도 한 번에 많이 만들어 병조림해 두고 쓴다. 뜨거울 때 재빨리 병에 담아 밀봉하고, 장기 보관을 위해서는 한 번 더 병을 중탕하는 것이 요령이다.

 


7. 며칠 내로 소비할, 많이 한 음식 보관을 위한 병조림


우리 집은 서양식 -스파게티 같은 이탈리아식이나, 감자에 채소를 곁들여 먹는 독일식- 요리와 한식 요리가 어우러진 다양한 식탁을 차리기 때문에 한국에서 살 때처럼 매 끼니 쌀밥을 먹고 살진 않는다. 하지만 가끔 잡곡밥 같은 곡물 조리를 할 때면 냄비에 우리 가족 2끼 분량의 밥을 한 뒤, 밥이 아직 뜨거울 때 준비해 둔 유리병에 담아 식기 전에 재빨리 뚜껑을 닫아 밀봉해 서늘한 곳에 저장한다. 그러면 가을 겨울에는 사나흘 이상, 한여름에도 이틀 정도는 무리 없이 두고 먹을 수 있다. 전력이 많이 소비되는 전기 밥솥 대신, 이렇게 냄비에 밥을 해서 유리병에 밀봉을 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작은 냄비에 두세 숟가락 정도의 수분을 더해 밥을 데우면 전기밥솥에 며칠씩 보온해 둔 밥보다 훨씬 맛있다.

 

매끼마다 음식을 새로 하긴 싫지만, 전력 소모가 많은 전기밥솥이나 냉장고 사용 없이 끼니 준비를 하고 싶다면, 위에 언급한 것처럼 한 두 끼 더 되는 분량으로 음식을 한 후 뜨거울 때 병에 담아 밀봉한 후 며칠 뒤 먹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 이 방법은 일반적인 병조림 같은 장기 보관이 아닌, 단 며칠간의 저장을 위한 말 그대로 단기 보관용이니, 음식이 상하지 않게 가능한 만든 지 며칠 내로 금방 먹는 것이 좋다.)

 

사실 거의 모든 뜨거운 음식은 병조림할 수 있으니, 집에서 즐겨 해먹는 반찬이나 요리가 있다면 병조림을 시도해 보자. 잡균을 없애기 위해 병을 미리 소독할 것, 병에 담을 때 남는 공간 없도록 가능한 한 눌러 담을것, 그리고 요리가 막 끝난 상태로 아주 뜨거울 때 용기에 담을 것, 장기 보관을 하고 싶다면 한 번 더 병을 중탕할 것. 이 네 가지를 유념해 시도해보면, 다양한 음식을 병조림해 보관할 수 있다. 각자 음식에 따라 각각 장기 보관이 얼마나 가능한지 등을 미리 시험해 봐야 하겠지만, 집에서 자주 해먹는 요리들의 병조림 요령을 나름대로 터득해 정리하게 된다면, 밑반찬으로 가득 찬 여러 대의 냉장고를 가동할 필요 없는 에너지 절약적인 생활이 가능할 것이다.


중탕의 노하우

▲ <표 1. 병 중탕 시간>▲ <표 1. 병 중탕 시간> 가정마다 레인지의 화력과 요리에 걸리는 시간이 다른 점을 생각해 중탕시간에 관한 팁을 말하자면, 찬물을 붓고 중간 불에서 냄비를 끓이다가 물이 끓기 시작하면 약한 불로 바꾼 후 위의 표에 적힌 시간의 절반 정도를 더 끓인다. ⓒ 김미수

 


앞에 소개한 방법을 바탕으로 직접 집에서 병조림을 만들어 보면, 생각보다 까다롭고 복잡하거나,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내게는 우리 집 부엌살림의 보물들이라 칭할 만한 각종 병조림들(특히 채소 병조림)을 만들어 보기를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수납과 저장성이 뛰어난 건조


- 텃밭에서 난 허브 말리기


한국에서도 많이들 각종 나물을 건조해 겨울철에 묵나물을 만들어 먹는다. 우리 집도 예전에는 채소를 많이 말려 썼다. 나물뿐만이 아니라 각종 채소을 얇게 썰어 말렸다가 겨울에 물에 불려 사용했는데, 이런 말린 채소들은 묵나물처럼 볶아 먹거나, 서양식 채소 스프를 끓이기에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건조한 식품 특유의 향미 때문에 생채소나 병조림한 채소를 이용한 요리와는 그 맛에 차이가 있는지라, 건조한 채소요리를 매일 같이 먹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텃밭이 생긴 후로는 주로 양념과 차를 위한 여러 허브과 텃밭에서 수확한 몇 가지 콩류 정도만 건조해 사용하고 있다.

 

허브는 주로 봄과 가을철 허브 잎도 여리고, 날씨도 볕이 좋고 건조할 때 줄기 채로 잘라 다발을 만들어 그늘지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말린다. 잘 건조한 허브를 차를 위한 용도는 줄기째로 잘라 유리병에 담아 두고, 양념을 위한 허브는 위에서 잎만 분리해 유리병에 담아둔다. (줄기에서 잎을 분리할 때, 잎이 부스러지면서 가루가 떨어지기 때문에, 바닥에 큰 쟁반을 놓고 작업하는 게 좋다.) 용기에 담을 때 허브는 분리한 잎 채 그대로 담아뒀다가 양념 할 때마다 손으로 비벼 잘게 가루 내 사용한다. 필요에 따라 처음부터 말린 허브를 잘게 부순 상태로 용기에 담아 보관해도 무관하다. (이탈리안 허브 믹스 등 몇 가지 허브를 섞어 만들어 놓고 쓸 경우)


- 향미가 진해지는 채소 말리기


텃밭 없이 살던 예전에는 겨울나기용 채소를 몇 가지 말리곤 했었는데, 요즈음엔 저장 채소 등으로 채소를 거의 말려 쓰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묵은 나물용으로 자주 말려 쓰는 채소 외에 국물 낼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뿌리채소- 당근, 뿌리 셀러리나 대파 같은 것을 말려 놓고 쓰면 요리의 맛이 깊어진다.

말릴 때 손톱 크기 정도로 썰어 말리거나, 라면 건 스프에 들어있는 말린 채소 정도의 크기로 아주 작게 썰어 말릴 수도 있다. (말린 뿌리채소는 요리 전 두어 시간 물에 불렸다가 사용하면 된다.)

 

 

따로 요리할 필요없이 여러 해 동안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짭조름한 밑반찬 - 염장

 

김치 냉장고나 냉동고 없이 김치를 몇 개월 이상 저장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간장, 고추장 등에 절이는 각종 장아찌 종류는 비교적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우리 집 켈러에는 2년 전에 담아 둔 깻잎 장아찌 가 아직도 몇 병 남아 있다.

나는 장아찌 종류를 담을 때도 350mL 500mL 크기의 유리병에 나누어 담가놓는데, 이렇게 하면 큰 통에 담아서 수시로 덜어 먹는 것보다 공기 접촉이 차단되어 장기간 저장에 좋다. 염장식품 역시 유리 뚜껑이 달린 병이나 플라스틱 뚜껑이 달린 병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경험상 철제 뚜껑에 플라스틱 비닐을 한 겹 보호막으로 둘러도 소금기에 의해 뚜껑이 녹슬거나 부식되는 경우가 잦다.


- 깻잎 장아찌


깻잎을 서리가 내리기 전에 따서 유리병에 차곡차곡 눌러 담아 알코올(맥주나 포도주)과 집간장을 1:1의 비율로 섞은 것을 부어주면 끝.


- 고추장 장아찌


다듬어 씻어 물기를 제거한 채소(양배추, 비트, , 당근, 마늘 등 원하는 대로)는 원하는 크기대로 썰어서 약간 소금을 뿌린 후 고추장과 섞어준 후 용기에 담아 보관한다. 양념하지 않은 생김 말린 것을 위에 덮어 공기를 차단하면 더욱 좋다.

(다음['냉장고 없이 살기' 시리즈 2-2]로 이어집니다.)



<'냉장고 없이 살기' 시리즈>

2010/03/17 - [My-ecoKitchen] - ['냉장고 없이 살기' 시리즈 1] '냉장고 없이 살기'로 생태와 경제, 둘 다 챙겨볼까

2013/10/31 - [My-ecoKitchen] - ['냉장고 없이 살기' 시리즈 2-1] 한겨울에 여름과일? 이렇게 하면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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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글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