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답게 먹자

2017. 2. 28. 04:22My-ecoKitchen

[독일댁의 생태적인 삶]

-말리고 저장하고 조금씩 기른 것들로(글 전문 보기)


마트에 가면 어느 때고 온갖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한가득인 요즘 세상에선 추운 겨울에 무얼 먹고 살아야 하는지 걱정도 고민도 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전문가들은 죄다 얼어 밭에선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한겨울에도 “건강을 위해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정기적으로 먹는 게 좋다”고도 한다. 지구를 반 바퀴 가까이 돌아서 온 것이거나 외부와 차단된 비닐하우스에서 인공조명을 쪼이고 난방을 해 키운 것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재배 환경이 인공적으로 관리되는 온실재배 신선 채소들이 과연 얼마나 영양 가치가 있을지 의구심이 들고, 제철 채소보다 질산염 농도는 높다고 한다. 단열도 안 되는 온실에서 화석연료로 난방을 해 대니 에너지 낭비와 손실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다.


글 _ 사진 김미수


▲ 엄동설한에도 텃밭 한구석에 살아남아 있는 들상추. ‘온실 속의 화초’보다 이토록 강한 생명력을 지닌 채소가 생태계에도 건강에도 더 좋지 않을까. ⓒ 김미수


일조량 적고 기온 낮을수록 채소 내 질산염 쌓여

몇 년 전 독일에서는 겨울철 판매되는 루콜라의 질산염 함유량이 허용 기준치를 훌쩍 넘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2009년 독일연방위해평가연구원(BfR)에서 발표한 자료 ‘루콜라, 시금치 및 상추 속 질산염[각주:1]’에 따르면 질산염은 그 자체로는 해가 없는 물질이지만, 미생물에 의해 식품 자체에서나 체내에서 아질산염으로 변환되면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아질산염은 아민과 반응해 니트로사민과  같은 N-니트로소 화합물로 바뀔 수 있는데, 동물실험에서 이들 화합물 대부분이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졌단다. 2010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 (IARC)에서도 섭취 시 체내에서 니트로소 화합물로 바 뀌는 질산염과 아질산염을 살충제 및 농약으로 쓰이는  DDT, 몬산토에서 ‘라운드업’으로 이름 붙여 파는 제초제인 글리포세이트와 같이 발암추정물질(그룹2A 발암물질)로 분류[각주:2]한 바 있다.


위 자료에 따르면 질산염은 식물 성장에 유용한 자연 물질로, 식물 뿌리로 흡수되어 광합성 작용을 통해 단백질 화합물로 바뀐다. 따라서 식물 생장기에 일조량이 많을 수록 질산염 잔류량은 적고, 일조량이 적은 겨울철에는 질산염이 잘 전환되지 못해 식물 내에 많이 축적된다. 그 뿐만 아니라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사용하는 질소비료  때문에 채소 속 질산염 농도가 높아지기도 한단다. 일조 량 외에 기온과 재배 방식도 식물 속 질산염 축적에 영향을 준다. 기온이 낮을수록, 또 노지보다 온실에서 재배할  때 질산염이 많이 농축된다.


▲ 지역사회지원농업(CSA)을 하는 지인은 수확한 채소를 흙바닥으로 된 켈러(지하나 반지하에 있는 저장고)에 돌려 쌓거나 세워 두어 겨우내 신선하게 저장한다. ⓒ 김미수


신선 채소 없이도 먹을 것 풍성한 겨울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시작하고 얼음이 두껍게 얼면 서 눈발이 날리는 한겨울이 되면, 생태적으로 먹고 사는 일이 꽤 부담스럽고 고민된다. ‘겨울 텃밭엔 신선 채소가  부족하다’는 결핍에 대한 본능적인 염려 때문일 테다. 따지고 보면 가을걷이한 텃밭 채소며 집 주위에서 따다 놓은 사과와 호두 같은 저장 먹을거리가 넘쳐 나 배부른 겨 울나기를 준비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말이다. 철  모르는 신선 채소 없이도 겨울 밥상을 풍성하게 하는 생태적인 식재료들을 소개한다.


 건조채소     겨울에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무침 재료로 제철에 손질해 잘 말려 둔 나물거리가 있다. 텃밭이 없던 시절에는 가을에 주키니호박 같은 제철 채소를 많이 사다  말려 두고 겨우내 먹었다. 하지만 특유의 향 때문에 말린 채소만 먹다 보면 쉽게 물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요새는 추위가 오기 전 대거 수확하고 남은 서리 맞은 깻잎, 잘  여문 콩과 옥수수 알 정도만 말려 두고 쓴다.


 병조림 채소     텃밭을 본격적으로 부쳐 먹기 시작하면서는 병조림을 적극 활용해 왔다. 매일 같이 수확해 먹어도 수확량이 남아도는 제철에 깍지째 먹는 콩이나 토마토를 허브 가지를 함께 넣고 소금물에 병조림해 두면 건조 채소보다 좀 더 생채소와 비슷한 맛을 낸다. 체리와 멜론 같은 과일도 비정제당을 살짝 넣고 물을 부어 병조림해 두면 사계절 내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겨우내 두고 먹다 남은 늙은 호박이나 단호박을 압력솥에 푹 쪄서 블렌더로 갈아 퓌레를 만든 뒤 병조림하면 겨울이 지난 뒤까지도 문제없이 잘 먹을 수 있다.


 저장 채소     된서리가 내리기 전에 캐내 양동이에 모래와  함께 담아 두고 겨우내 꺼내 먹는 야콘, 돼지감자, 파스 닙, 뉴질랜드마, 타이거너츠 등 각종 뿌리채소와 껍질이  단단해 저장성이 높은 늙은 호박 같은 호박류는 텃밭에서 잘 자라 저장량이 많은 겨울나기 단골 채소들이다.


 제철 채소     엄동설한 눈밭에서도 자라나는 몇몇 겨울 채소는 저장 채소만으론 자칫 부족해질 수 있는 생기를 채워 주기에 무리가 없다. 일부러 심은 텃밭 겨울 채소로 흙바닥에 붙어 납작하게 자라는 샐러드용 채소인 들상추, 돌나물, 광부상추, 숟가락고추냉이, 유럽나도냉이와 여러해살이 케일류, 방울 양배추 등이 있다. 또 영하의 추위에도 항상 살아남아 있는 근대와 비트류 잎채소, 치 커리, 채소가 부족할 때 캐 먹을 수도 있는 회향 뿌리, 오레가노, 파슬리, 잎샐러리, 술오이풀, 야생리크, 아기별꽃 같은 허브 및 야생초들도 있다.


▲ 파, 마늘, 양파 등 채소 뿌리나 싹이 난 뿌리채소를 화분에 심어 두면 신선 채소를 생태적으로 얻을 수 있다. ⓒ 김미수


 화분 텃밭 채소     화분은 텃밭도 지하 저장 공간도 없는 이들을 위한 최고의 겨울철 신선 채소 공급처이다. 우리 집에서는 냉해에 강하지 않아 실내에 두어야 하는 로즈메리와 나무고추파프리카 같은 몇몇 여러해살이 작물 화분을 적극 활용한다. 키가 1.5m 정도로 크게 자라 해가 지나도 계속 열매가 익어 가는 나무고추파프리카는 덜 익어 푸른 상태에서는 파프리카로, 빨갛게 익어서는 매콤한 맛을 내는 고추로 요리에 쓴다. 화분 아래쪽에 요리에 쓰고 뿌리 위 1㎝ 정도만 남긴 대파, 잔 파나 마늘과 양파 꽁지 등을 버리지 않고 심어 둔 뒤 올라오는 푸른 잎을 계속 수확해 먹는다. 어느 해외 블로거의 글을 보면 심지어 양송이버섯의 갓 부분은 떼어 먹고 남은 심지 부분을 흙에 묻어 두면 버섯이 새로 자란다는데, 아직 시도해 보지 않아 진위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만큼 다양한 채소 뿌리나 뿌리채소의 꽁지 부분을 활용하면 따로 돈을 들이지 않고도 겨울철 화분 텃밭을 알뜰하게 꾸릴 수 있다.


 새싹 채소     누구나 별다른 도구 없이 집에서 쉽게 길러  먹을 수 있는 겨울철 비타민의 보고다. 새싹 채소 씨앗은 되도록 유기농으로 구해다 쓰는 것이 좋고, 굳이 전용 용기를 따로 구입할 필요 없이 집에 있는 유리병을 쓰면 된다. 누군가는 우유팩처럼 플라스틱 코팅된 일회용 종이팩에 구멍을 뚫어 새싹 채소 재배 용기로 재활용하기를 권하기도 하지만, 이보다 안전한 유리 용기를 쓰는 게 제일 좋다. 씨앗 크기에 따라 씨앗을 서너 시간에서 하룻밤 정도 충분히 물에 불렸다가 병 입구에 거름망을 바짝 붙여 물을 걸러 낸다. 찬물로 헹구고 거르기를 1일 2~3회 정도 하다 보면 씨앗에서 싹이 나고 자란다. 콩나물콩, 렌틸콩, 녹두 등 콩류는 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기르는 게 좋다. 싹이 비교적 빨리 트고 관리가 쉬우며 요리 활용도도 높은 종류로는 무, 겨자, 알파파 등이 있다.


▲ 집에 있는 유리병에 새싹을 틔워 먹으면 건조채소와 병조림·저장 채소만으로는 살짝 부족할 수 있는 비타민과 생기를 보충할 수 있다. ⓒ 김미수


상품성을 위해 사철 내내 외부와 차단된 온실에서 재배되는 채소들은 껍질이 있는 듯 없는 듯 연하고 부드럽기만 하다. 하지만 노지에서 날씨의 변화무쌍함을 제대로 겪어 내고 자연의 기운을 직접 받으며 자란 작물들은 그 보다 질기고 단단할 뿐만 아니라 절기에 맞춰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과 기운을 제대로 채워 준다. 여름작물은 몸 속 더운 열기를 내려 서늘하게 해 주고, 겨울작물은 몸을  데워 준다. 겨울철 온실재배로 인한 에너지 낭비나 질산 염 문제 등을 제외하고도, 우리가 제철 작물을 먹고 자연의 기운에 따라 생태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김미수 님은 2005년 독일로 건너가 ‘조금씩 더 생태적으로 살아가기’에 중심을 두고 냉장고 없는 저에너지 부엌을 시작으로 실내 퇴비 화장실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또 먹을거리를 직접 가꾸는 등 좀 더 지속 가능하고, 좀 덜 의존적인 생태 순환의 삶을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my-ecolife.net에 이런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에서 만드는 월간지 <살림이야기> 57호 2017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2016년 첫호부터 '[독일댁의 생태적인 삶]'이란 꼭지에 독일에서 겪는 생태적인 삶과 독일내 생태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살림이야기 측에서 동의해 주신 덕분에 다음호가 발간되면서 이 글을 My-ecoLife에도 전문 공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살림이야기 홈페이지에 가시면 과월호의 다른 모든 내용도 보실 수 있습니다.

Link: [살림이야기]


 참고 자료 


  1. Bundesinstitut für Risikobewertung(BfR), "Nitrat in Rucola, Spinat und Salat", Aktualisierte Stellungnahme Nr. 032/2009 des BfR(2009.2.6) [본문으로]
  2. 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IARC), "List of classifications, Volumes 1-117', monographs.iarc.fr/ENG/Classification/index.php(검색일 2017.1.18)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