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유기농 농민회와 공정무역 상점

2023. 10. 7. 00:07My-ecoLife

[독일댁의 생태적인 삶]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 준(글 전문 보기)

 

괴팅겐 대학교에서 2014년 발표한 논문 <농업 공급 구조의 지속가능성: 독일의 유기농가 사례[각주:1]>에 따르면 1990년대 소비자들은 환경보호를 이유로, 2000년대에는 건강하고 맛있는 먹을거리를 먹으려고 유기농 제품을 구입했다. 최근의 소비자들은 로컬푸드를 이용하고 동물복지를 향상하며 생산자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기 위해서 등 다양한 이유로 유기농 제품을 구매하고, 이에 따라 높아지는 가격도 기꺼이 지불하고자 한단다. 한국에서 믿을 수 있는 친환경 먹을거리를 소비하는 흐름에 한살림 30년의 역사와 공로가 담겨 있듯이 독일에는 90여 년 역사의 유기농 농민회와 40여 년 역사의 공정무역 상점이 있다.

 

 

글 _ 사진 김미수

 

▲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산업화된 거대 농업, 유전자 조작에 반대해 올해 1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한 데메터 농민회. “지역농과 생태농업을 위하여”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 에바 뮐러(데메터 농민회)/ Eva Müller(Demeter e.V.)

유기농지 늘리고 공익에 기여하는 농민

독일 유기식품산업협회(BLW)에서 2015년 펴낸 자료집[각주:2]에 따르면 독일은 유럽 유기농 제품 시장의 최대 소비국으로, 2013년 유럽 국가별 유기농 제품 소매 판매 총액의 31%를 차지했다. 이를 증명하듯 독일 전역에 유기농 제품 전문 가게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대형마트 같은 일반 가게에서도 유기농 제품을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독일 식품농림부에서 올해 2월 펴낸 보고서[각주:3]에 따르면 2014년 독일 전체 유기농 농가 수는 2만 3천398호이고 유기농지 총면적은 104만 7천633ha로, 2000년의 1만 2천740호와 54만 6천23ha에 비해 15년간 2배 가까이 늘었다. 전체 유기농 농가의 51.9%는 유기농 농민회 소속으로, 전체 유기농지의 약 2/3를 경작하고 있다.

 

현재 독일 유기농 농민회(농민회)는 9개이다. 1924년 루돌프 슈타이너의 인지학에 뿌리를 둔 바이오다이나믹농법을 바탕으로 설립된 데메터를 시작으로 1950~70년대 독일 유기농운동의 다른 한 축을 담당한 유기 생물학적 농업운동에 기반을 두고 1971년 설립되어 독일 최대 농민회로 성장한 비오란트, 1982년에 설립되어 현재 독일 제2의 농민회이자 세계적인 유기농 인증 단체로 발전한 나투어란트, 동독의 기독교 환경운동을 기반으로 1989년 생겨나 동독 지역의 유기농 구조 구축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게아 등이 있다. 1985년 포도 생산자인 동시에 포도주 양조업자이자 판매자인 빈쩌를 위해 생겨난 에코빈처럼 특수한 농민회도 있다.[각주:4]

 

농민회마다 중점 사항과 규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유럽연합(EU) 유기농 기준에 비해 좀 더 엄격한 게 공통점이다. 이를테면 EU 유기농 기준은 한 농가 내 유기농과 관행농 동시 경작을 허용하고 95% 이상의 유기농 사료를 쓸 수 있게 하는 데 반해, 비오란트와 데메터 회원 농가는 반드시 유기농으로만 경작해야 하고 사료 역시 100% 유기농으로만 쓸 수 있다. 또 농민회 회원 농가는 해마다 농민회에서 시행하는 품질 검사를 통과하고 요구 조건을 충족하여야 회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농민회는 다양한 자료와 세미나 등으로 회원 농가를 교육하고, 전문 상담 및 지원금 프로그램 소개 등으로 돕는다. 협력 단체와 공동으로 새로운 농법을 연구하거나 기존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공익에 이바지하기도 한다.

 

▲ 소비자, <데메터 저널> 독자,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단이 선정한 2016년 ‘데메터 올해의 제품상’ 수상자들. 공동 1위를 차지한 레드비트 케첩과 사과 적양배추찜은 데메터 농민회의 규정에 따라 회원 농가가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물품이다. ⓒ 에바 뮐러(데메터 농민회)/ Eva Müller(Demeter e.V.)

</데메터>

 

모두가 공정한 세계를 위해, 공정무역

각종 향신료와 커피, 초콜릿 등 기호품은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 이른바 제3세계 국가가 원산지인 경우가 많다. 우리 부부는 수입품보다 직접 재배하거나 인근에서 생산한 먹을거리를 선호하지만 초콜릿, 유럽 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양념거리, 캐슈넛과 퀴노아 같은 이국적인 식품을 구입하러 공정무역 상점인 벨트라덴을 종종 찾는다.

 

벨트라덴은 공정하게 생산된 상품을 수입하여 판매하는 전문 상점으로, 정식 명칭은 ‘아이네 벨트라덴’, 즉 ‘하나의 세계 상점’이다. 1970년대 초 제3세계에 식민지 착취를 보상하기 위해 시작된 독일 정부의 개발원조정책에 반대해 개신교청년노동협회와 가톨릭청년회 회원 3만 명이 70여 개 도시를 돌며 기아 행진을 했는데, 이를 기반으로 1971년 독일 최초의 공정무역 단체가 설립되었다. 당시는 오일쇼크로 인한 차량 운행 제한 정책과 베트남전, 쿠데타 후 국민을 탄압한 칠레 정부의 만행 등으로 제3세계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때였기에, ‘원조 대신 무역’을 주창하는 공정무역운동으로의 흐름이 자연스러웠다.[각주:5]

 

1973년 슈투트가르트에서 첫 벨트라덴이 문을 연 이후 2016년 현재 약 800개 벨트라덴에서 활동가 3만여 명이 일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무보수 자원활동가로, 대부분의 벨트라덴은 90% 이상 자원활동가의 활동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운영비를 제한 순수익금을 다양한 활동과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다. 이외에 특정 상점에 소속되지 않은 6천여 개 활동그룹이 있다. 단순히 공정무역 제품 판매를 넘어 캠페인 진행, 시민 교육, 생산자 자립 직접 지원 등으로 공정무역 운동을 펼쳐 온 벨트라덴은 개인의 부 축적이 궁극적인 목적인 일반 상점과는 다르다.

 

 

▲ 향신료, 초콜릿, 커피, 퀴노아 등 이국적인 식품뿐만 아니라 각종 장신구와 가방 등 액세서리까지 공정하게 생산된 다양한 물품이 있는 벨트라덴 ⓒ 김미수

 

‘돈보다 사람’이라는 가치 지킨다
오늘날 독일 내 공정무역 거래는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공정무역포럼에서 올해 8월에 펴낸 <공정무역 최신 발전 동향[각주:6]>을 보면 2005년에서 2015년까지 10년간 독일 내 공정무역 총매출은 1억 2천1백만 유로(약 1천509억 원)에서 11억 3천9백만 유로(약 1조 4천204억 원)로 9.4배나 늘었다. 하지만 이 중 벨트라덴과 활동그룹에서 올린 매출은 6.7% 정도로 공정무역을 널리 알린 공로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총매출의 상당 부분을 일반 마트에서 판매하는 공정무역 제품이 차지하는데, 마트 전체 제품 중 공정무역 제품의 비중은 1% 정도에 불과하다. 그뿐만 아니라 일반 마트에서는 공정무역 인증에만 초점을 맞추고 가공에서 운송 및 판매까지의 과정에 대한 가치는 전혀 고려하지 않아 공정무역이 기업의 새로운 마케팅 전략과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비판도 있다.

 

벨트라덴에 가 보면 ‘전문 상점이니 제품 가격이 매우 비쌀 것’이란 편견과 달리 일반 가게보다 저렴한 경우도 적지 않다. 또 처음 보는 활동가와도 대화를 나누게 되곤 해서 물건을 고르는 것보다 이야기하는 데 시간을 더 보내는 때도 부지기수다. 물품과 소비만 있는 대형마트와 달리 벨트라덴에는 사람과의 관계와 소통이 있다. 특히 돈이 아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순수한 열정으로 일하는 그곳의 활동가들은 사람과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벨트라덴을 즐겨 찾는다.

 

 

↘ 김미수 님은 2005년 독일로 건너가 ‘조금씩 더 생태적으로 살아가기’에 중심을 두고 냉장고 없는 저에너지 부엌을 시작으로 실내 퇴비 화장실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또 먹을거리를 직접 가꾸는 등 좀 더 지속 가능하고, 좀 덜 의존적인 생태 순환의 삶을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my-ecolife.net에 이런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에서 만드는 월간지 <살림이야기> 55호 2016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2016년 첫호부터 '[독일댁의 생태적인 삶]'이란 꼭지에 독일에서 겪는 생태적인 삶과 독일내 생태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살림이야기 측에서 동의해 주신 덕분에 다음호가 발간되면서 이 글을 My-ecoLife에도 전문 공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살림이야기 홈페이지에 가시면 과월호의 다른 모든 내용도 보실 수 있습니다.

 

Link: [살림이야기]

 

 참고 자료 


 

  1. Sebastian Lakner & Marie von Meyer-Höfer, 「Sustainability of agricultural supply chains: the case of organic farming in Germany」, Department of Agricultural Economics and Rural Development, University of Göttingen (2016), pp152~153 [본문으로]
  2. Diana Schaack et al., 「Zahlen • Daten • Fakten - Die Bio-Branche 2015」, Bund Ökologische Lebensmittelwirtschaft e. V. (BÖLW) (2015), pp4~5 [본문으로]
  3. Federal Ministry of Food and Agriculture (BMEL), 'Division 516 – Organic Farming in Germany'(2016), p10 [본문으로]
  4. "Anbauverbände", www.oekolandbau.de(검색일 2016.11.13) [본문으로]
  5. "Die Geschichte des Weltladens", evangelisch.de(2016.2.18) "Echte Fairness für eine bessere Welt", evangelisch.de(2016.12.28) [본문으로]
  6. Manuel Blendin et al., 「Aktuelle Entwicklungen im Fairen Handel」, Fairer Handel e.V.(2016), pp6~7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