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25. 03:16ㆍMy-ecoLife
"더이상 못 참겠어, 이젠정말 머리를 잘라야 할 것 같아. 머리가 기니까 더 빨리 지저분해지고, 더러움도더 잘 타는 것 같아. 머리 감는데, 샴푸랑 물도 더 드는 것 같고.."
이에 나는 '그래봤자, 짧은 컷트머리인데, 무슨....... 뭐가 더 많이 든다는거야...'라고속으로만 생각하며 비져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한국말에 야한 생각을 자주하면 머리가 빨리 자란다는 말이 있어."
"뭐야? 그거 진짜야?"
"아니 그런 말이 있다고......."
그렇게 남편을 한바탕 놀리고 생각해보니, 남편 머리를 자른지도 벌써 한달 반이 넘어간다. 곱슬이라 머리가 자란 것이 아주 도드라져 보이진 않지만, 옆머리와 뒷머리가벌써 웃자라 별로 단정치 못해 보이기는 했다.
'그래, 오랫만에 머리 자르는솜씨 좀 연마해 보자.'
▲머리 자르기 전(왼쪽)과 후(오른쪽)의 모습- 길었던 머리를 깨끗하게 자르고 나니, 남편 머리통이 햇 도토리 마냥 이쁘다. ⓒ 김미수
나른한 어느 오후, 욕실에 자리를 마련해 오랫만에 남편 머리를 잘랐다.
뾰족한 남편 정수리 부터 시작해 옆머리, 그리고 뒷머리 순으로 길이를 맞춰 잘라 나갔다. 이때, 자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른머리 길이가 위 아래 양옆이 같게 사방으로맞춰가며 자른다. 이는 처음 남편머리를 자를 때 시어머니께서 알려주신, 머리를쉽게 자르는 요령이다. 근데, 이 방법은 곱슬머리에게만 해당될 것 같다. 한국인 특유의 빳빳한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들을 이렇게 잘라 놓았다간, 아마그 머리통에 대고 고슴도치가 형님하자고 할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시어머니께서 남편 머리를 잘라주셨는데, 우리가 함께 살기 시작한 이래로 이제는 내 담당이되었다.
혹시 내가 전직 미용사가 아니냐고? 아니, 이제껏 어디서 머리자르는 법을 따로 배운적은 없다. 다만, 한국을 떠나올때 준비해 온비장의 무기를 여지껏 믿어왔을 뿐. 남편은 우리가 연애할때부터 결혼하면 자기 머리는 내가 잘라줘야 한다며은근한 압력을 담은 부탁을 자주 했었다. 그래서, 자연히 미용가위는독일로 이사면서 내가 챙겨가야할 품목 1순위권에 속했고, 떠나기 전나는 남대문 미용도매상가에서 '3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준전문가용미용가위를 샀다.
남편 머리를 내가 자르기 시작하던 초창기에는 하다보니 균형이 맞질 않아, 자르다 자르다 나중에는 군입대를앞둔 사람의 머리처럼 '거의 까까머리'로 만든 적도 있었다. 물론 머리를 밀때 흔히 쓰는 일명 바리깡이라는 머리자르는 기계가 아닌, 온전히미용 가위 하나만을 사용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그것도 1시간 반이상이 걸려서.
지금은 크게 흠잡을 데 없이 곧잘 자르곤 하지만, 머리 자르는데 자신감이 붙어서 이젠 아주 잘자른다고말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여전히 자르는 데 걸리는 시간도 꽤 길어서 보통 한 40분은 걸린다..
미용실을 운영하시는 외숙모 말로는 곱슬머리 자르는 것은 일도 아니란다. 물론 곱슬인 남편 머리를 잘라놓고보면, 이리저리 컬이 있는 머리카락 덕에, 웬만해선은 괜찮게 보이긴한다. 층만 지지 않게 깎는다면.
다행히 남편이 그다지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라, 내가 자기 머리를 아주 이상하게 만들어 놓지 않는 한, 보통 내게 감사해하고 만족해 한다.
▲나를 도와주는 도구들- 왼쪽부터 마지막 갈무리를 위한 면도칼, 한국에서 장만해온 일반 미용가위, 선물받은 솎음 미용가위, 빗 ⓒ 김미수
내가 사용하고 있는 미용도구는 준전문가용 일반 미용가위, 전문가용 솎음가위, 납작빗, 면도칼 그리고 머리 자를때 몸에 두르는 보호수건- 이렇게 다섯 가지다.
솎음가위는 작년에 한국에 다니러 갔을때 외숙모께서 주신 선물로 써보니 참 유용하다. 일반 가위로 머리를대충 길이 맞춰 잘라 놓고 이 솎음가위로 끝을 조금씩 자르면서 다듬어주면 자르고 난 후 머리카락이 한결 자연스러워 보인다. 면도칼은 마지막에 목 위의 뒷머리와 구렛나루를 깔끔하게 다듬는데 사용한다.
거의 마무리 단계로 머리카락을 다듬고 있는데, 어느새 깜박 잠이 들었는지 남편의 고개가 살짝살짝 앞으로숙여진다. 깨울까 하다가, 그 반동이 그리 크진 않아 그대로 뒀다. 외려 혹시 잠이 깰까봐 내 손길이 더 조심스러워진다. 누군가 내 머리를 잘라줄때 가끔씩 몰려오는 졸음이 얼마나 달콤한지 나도 알고 있다. 미용실에서 그러고 있자면, 좀 민망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뭐 어떠랴 지금은 우리집인걸.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도 이 사람은 내가 자기 머리를 잘라주길 바라는 건지도 모르겠다.이럴땐 내가 기계없이 가위로만 머리를 잘라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윙윙대는 머리자르는 기계를사용했다면, 아마 남편이 이리 쉽게 잠에 빠져들지는 못했겠지.
▲ 자르고 난 머리카락- 신문지에 잘 모았다가 퇴비 만드는데 보태준다. 염색도 파마도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머리카락 역시 시간이 지나면 흙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 김미수
"다 됐다! 어디 보자.. 마음에 들어?"
"에이...그건 머리감고 말리고난 다음에 봐야 알지....... 고마워."
머리 잘라줘서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고 하지만, 평가는 나중에 꼼꼼히 보고 내리겠단 말이다.
근데 나는 척 보니 대략 감이 온다. 이번엔 꽤 잘 잘라졌다고. 기껏해야일년에 10번도 채 안 되게 그것도 남편 머리만을 잘라온 내 솜씨이긴 하지만 말이다.
머리를 깎아 놓고 보니, 막 딴 햇도토리 같은게 남편 머리통이 참 이쁘게 보인다. 그래서 머리를 감는 남편 등 뒤로 한 마디 해 줬다.
"에고, 당신 머리 새로 자르니까, 새 (도토리) 신랑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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